“집값 잡으려다 전셋값 폭등 불러올라.” 8.31 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된 뒤 전세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 등 일부지역에서 국지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전셋값 상승세가 서울ㆍ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세시장 불안은 자칫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뿌리부터 흔드는 시한폭탄이 돼 현 정권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집 많은 부자들을 겨냥한 8.31대책이 전셋값 폭등으로 이어져 서민ㆍ중산층의 주거안정을 해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노루를 피하니 호랑이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세시장 안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정지역에 국한된 전셋값 상승의 불길이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화벽을 만들어 적어도 꿈틀대는 전세시장에 정부의 강력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세가격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아직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최근 전셋값 상승에는 이사철 등 계절적 요인에 의한 부분이 많아 오는 10월 이후에는 안정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전셋값 상승은 일시적, 국지적 현상“=서울 지역 전셋값 상승 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가을 이사철이 겹친데다 전세 입주자들이 계약 만기가 돌아와도 집을 사서 이사하기보다는 대부분 전세계약을 연장, 시장에 매물이 줄어들면서 전세가격이 뛰고 있는 것이다. 11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전셋값 상승세는 9월 첫 주 0.17%보다 0.1% 포인트 가량 오른 0.28%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이는 2002년 봄 이사철인 4월 중순 0.3%를 기록한 후 3년6개여월 만에 주간 단위로는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강남(0.89%) 등 대체로 생활여건에 비해 전셋값이 낮다고 평가된 지역의 전세가격이 급등했다. 신도시의 전세가격 주간 변동률도 0.72%나 됐다. 특히 분당은 1.42%의 상승률로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그러나 최근 전세가격 상승세는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강남 30평형대 아파트 전셋값이 다른 지역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3억원선으로 강남 전셋값 상승까지 정부가 걱정해야 하느냐”며 “전세시장이 입주물량에 따라 지역적으로 다소 불안할 수 있지만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박사도 “아파트가 아닌 주거용 오피스텔이나 다가구ㆍ연립주택 등은 현재 공실률이 높아 전세가격이 비교적 싸다”며 “눈높이만 낮추면 얼마든지 전세로 갈 수 있고 서민주택의 전셋값은 크게 오르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 관점서 대책마련 서둘러야’=전세난이 아직 위험수위에 있지 않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박사는 “90년대까지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지금은 좀더 좋은 주거환경을 갖춘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수요가 많은 만큼 그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셋값 불안은 집값 불안보다 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세가격은 한번 꿈틀대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움직여 그 파급효과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통상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70% 정도에 달하면 내 집 마련 수요가 늘어 매매가격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특히 강북 뉴타운 개발이 서울시와 정부의 방침대로 광역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경우 수만명의 이주자 전세수요가 발생, 전세난이 우려되고 있다. 전세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주택공급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 100만가구를 건립하고 판교 등 공영개발지구에서 전세형 임대주택을 공급할 방침이다. 필요할 경우 다세대ㆍ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물량을 계획보다 2배 이상 늘릴 예정이다. 전ㆍ월세 보증금 융자를 확대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이 목표대로 차질 없이 건립될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임대주택의 경우 100만가구를 지으려면 여의도 면적의 10배인 1억평의 땅이 필요하고 연간 국가예산의 40%인 56조원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대주택의 입주자격이 저소득층에 국한돼 있고 평형이 작은 것도 전세수요를 흡수하는 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국민임대는 무주택자로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최대 70% 이하인 사람이 입주대상이며 국민임대ㆍ공공임대 주택규모도 현재 전용면적 25.7평 이하이다. 전세ㆍ월세 보증금 융자도 대책으로서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양산된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전ㆍ월세 보증금 융자를 받을 수 있는 신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전ㆍ월세로 살고 있는 저소득 월급쟁이들도 정부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세난이 일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세의 전ㆍ월세 전환이 확산되면서 늘고 있는 전ㆍ월세입자는 꼬박꼬박 월세를 내는 데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