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81> 당신의 대의명분은 안녕하십니까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은 본인의 비리를 감추려 신하경(김아중 분) 검사를 차로 들이받았습니다. 깨끗한 검찰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하려는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SBS 방송장면 캡처

법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대의명분을 위해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고 말이죠. 어쩌면 우리는 목적을 정당화하는 법을 너무 많이 배워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거나 ‘나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듯 자랑스레 스스로 행동의 이유를 언급하는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듣더라도 공감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그 꿈이 세계 평화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에 작은 변화를 가져오는 정도라도 그 방향이 긍정적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말입니다. 즉 ‘대의명분(大義名分)’은 본인이 이해하고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면 괜찮은 셈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대의명분이 그들만의 대의명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됩니다. ‘본인만’ 괜찮은 혹은 본인의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 그런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윤지숙(최명길 분) 법무부 장관입니다. 윤지숙 장관은 깨끗한 검찰을 만든다며 본인의 온갖 악행을 정당화하기 바쁩니다. 습관처럼 이야기하는 “법은 하나야”라는 대사는 그의 이중적인 면모를 잘 드러냅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비리에 연루된 이들을 법의 잣대로 심판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허울뿐입니다. 더 기막힌 점은 병역비리부터 살인미수까지 온갖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이 일들은 ‘깨끗한 검찰’을 위해 한 몸 기꺼이 희생한다는 정신에 사로잡혀서 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허구인 드라마지만 이토록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 주변에 윤지숙처럼 본인의 대의명분에 취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이들이 많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비자 유도편(有度篇)에 법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故矯上之失 詰下之邪 治亂決繆 출羨齊非 一民之軌 莫如法 屬官威民 退淫殆 止詐위 莫如刑 (법불아귀 승불요곡 법지소가 지자불능사 용자불감쟁. 형과불피대신 상선불유필부 고교상지실 힐문지사 치란결무 출선제비 일민지궤 막여법. 속관위민 퇴음태 지사위 막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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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에 굽히지 않는다. 법이 적용되는 곳에는 지혜로운 자도 피할 수 없고 용감한 자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과오에 대한 형벌은 대신도 피할 수 없고 선행에 대한 상은 필부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위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래의 간사한 것을 힐책한다.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고, 헝클어진 것을 풀며, 남는 것을 버리고, 잘못된 것을 가지런히 하여 백성을 하나로 하는 길은 법 만한 것이 없다. 관리를 격려하고 백성에게 위엄을 보이며 음란한 것을 물리치고 간사한 것을 그치게 하는 데는 형벌 만한 것이 없다.’ 법술가의 면모가 잘 드러난 한비사상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히는 대목 중 일부입니다. 법은 드라마 속 윤지숙 장관이 이야기한 것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고 엄격하게 행해져야만 합니다.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꼼수는 묵인해왔습니다.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면 작은 희생쯤 필요한 거라고 자조하면서요. 그래서 이 거대한 음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드라마가 그리고 옳다고 배워왔지만 정말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한비자의 유도편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나 봅니다. ‘대의명분’을 위해 행동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가 권리는 아닙니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한비의 가르침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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