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3일] 울산공업단지

[오늘의 경제소사/2월3일] 울산공업단지 ‘서독의 루르, 미국의 피츠버그를 한국에 실현시키자.’ 1962년 2월3일, 울산공업단지 기공식을 서울경제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일보에는 ‘4천년 빈곤 역사 씻고…’라는 부제와 함께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창조’라는 제하의 머릿기사가 실렸다. 울산이 한국 최초의 공업단지로 선정된 이유는 천혜의 입지 조건 때문. 드넓은 용지와 풍부한 노동력, 공업용수뿐 아니라 태평양 항로의 요충이어서 원료와 제품의 수출입 선적이 용이했다. 일제도 울산을 주목했었다. 패망으로 60% 공정에 중단됐지만 정유공장이 건설됐던 적도 있다. 군사정부의 추진력은 제2공화국 장면 정권이 구상한 기본안에 날개를 달아줬다. 인구 6만의 울산읍에는 불도저며 건설인력ㆍ공장기술자들이 몰려들었다. 정유공장(1964년)을 시발로 세계최대 규모의 요소비료공장 등이 속속 들어섰다. 입주 예정이던 제철소가 포항으로 갔지만 거대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세워졌다. 제1차 5개년계획이 종료된 1966년, 울산단지의 실적은 36개 입주업체에 생산 150억원, 수출 800만달러, 고용 1,693명. 2005년에는 614개 입주업체가 66조원을 생산해 340억달러를 수출할 계획이다. 고용도 8만7,150명에 이른다. 울산도 성장했다. 울산은 7개 특별ㆍ직할시의 막내지만 최대면적을 자랑한다. 울산의 1인당 소득(2002년)은 2,687만원으로 전국 평균 1,225만원의 두 배를 넘는다. 전국 최고. 달러로 환산하면 2만6,000달러를 넘는다. 43년 전 오늘 갈망했던 꿈은 현실이다. ‘한국의 루르’를 만들겠다는 희망은 목표를 훨씬 뛰어 넘었다. 울산ㆍ미포국가산업단지로 이름이 바뀐 울산단지는 세계최대의 기계장치산업단지다. /권홍우ㆍ경제부차장 입력시간 : 2005-02-02 16:34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