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상품의 방문판매 규제 완화 조치를 담은 개정 방문판매법(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워졌다. 국회 일정이 지연된데다 법안 세부 내용에 대한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부처 간 의견조율이 마무리되지 못한 탓이다. 당장 이듬해 상반기부터 방문영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던 금융투자 사업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2일 금융투자업계 및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일 개정 방문판매법을 7개월 만에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의결에는 실패했다.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방문판매법의 연내 처리 여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야당 간사인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관련 부처에서 제출하기로 한 수정안을 확인해야 한다"며 추가적인 논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직 12월 임시국회 일정이 남아 있지만 개정 방문판매법이 정무위의 우선 처리 대상에서 배제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연내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현행 방문판매법에 따르면 증권사·자산운용사·은행 등의 소속 직원이 금융투자상품을 직접 방문해 판매할 경우 고객이 14일 내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 그동안 해당 금융투자상품의 수익률이 하락했을 경우 그에 따른 손실은 금융투자 사업자가 떠안아야 했다. 실시간으로 수익률이 변동하는 금융투자상품의 특성을 감안하면 사실상 금융투자 사업자의 방문판매를 막아놓았던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4월 발의된 개정 방문판매법에는 소비자가 계약을 맺은 뒤 3일 이후부터 금융투자상품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되, 그 전에는 언제든 계약 취소를 할 수 있게끔 했다. 금융투자 사업자들이 고객의 계약 철회에 따라 손해를 보는 일 없이 소비자 권익을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동양그룹 회사채 불완전판매 사태'의 후속 조치 및 법적 분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회 및 금융위·공정위 등 관련 부처가 개정 방문판매법 처리를 위해 앞장서는 것을 껄끄러워한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방문판매와 관련한 규제를 완화한 뒤 '제2의 동양사태'라도 발생한다면 돌이킬 수 없다"며 "업계의 고충은 알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부터 방문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던 10여곳 증권사들의 사업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개정 방문판매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공포되더라도 시행까지는 3개월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연말까지 처리되지 못할 경우에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나 영업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KDB대우증권·삼성증권·우리투자증권·하나대투증권 등은 방문판매를 위해 태블릿PC 수십여대를 구입해 각 지점별로 배포하고 맞춤형 상품설명 자료를 개발하는 등 개정 방문판매법의 국회 통과를 기다려왔다. KDB대우증권 관계자는 "방문판매는 신규 고객을 모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통로"라며 "국회 통과가 무산될 경우 금융투자 사업자 입장에서는 핵심적인 신성장동력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 대형증권사의 지점장은 "방문판매가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당장 법안 처리가 안 된 상황에서 무턱대고 나설 수도 없다"며 "관련 사업에 대한 시스템·전략 등도 모든 입법 절차가 마무리된 뒤에나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