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케이블에 가입한 전국 1,500만 가구가 수신료를 지불하고도 보고 싶은 방송을 못 보니 이런 권리침탈이 없다. 일반기업에도 불똥이 튀었다. 방송 프로그램에 비싼 돈을 내고 광고를 붙였는데 방송 자체가 나오지 않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지상파 송출중단 사태는 지난해 11월에도 있었다. 역시 재송신료 문제로 8일간이나 중단되는 소동이 있었으나 당시는 디지털 방송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날로그 방송까지 확대돼 범위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케이블TV 시청자들은 꼬박꼬박 제 돈을 내고도 툭하면 방송이 끊기니 분통이 터진다.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KBS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애먼 시청자를 볼모로 삼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방적으로 방송을 끊어버리는 처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떠받들어도 부족한 고객들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대해도 되는지,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자성해봐야 한다. KBS 측도 소위 공영방송으로서 국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무엇보다 주무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상파 재송신 갈등은 이미 3년 넘게 이어지면서 법적 소송으로 번졌던 사안이다. 방통위는 이번에도 팔짱 끼고 위세만 부리다가 케이블 업계가 실력행사에 들어가자 그제서야 중재에 나서느라 허둥지둥하고 있다. 조정능력을 상실한 방통위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국민의 눈에는 한심하게 비쳐진다.
방통위는 SO 측에 과징금과 과태료를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리겠다고 하지만 사후약방문식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책을 마련하고 양측의 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난해 약속한 대로 합리적인 지상파 재송신제도 개선안을 조속히 내놓아 더 이상 시청자가 인질이 되는 비극이 재연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사태가 하루라도 더 이어지면 방통위의 존재이유에 대해 국민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협상은 협상대로 하되 무조건 방송부터 재개하도록 방통위는 동분서주 중재의 노력을 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