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같은 우유 생산”… 부가가치 무한서울경제신문과 한국과학재단이 제정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제 7회 수상자로 이경광 생명공학연구소 동식물세포공학 연구부장(48)이 선정됐다. 이박사는 락토페린을 생산하는 형질 전환 젖소 등 동물발생공학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이룬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의 연구활동과 연구세계를 소개한다.【편집자 주】◇수상자 연구성과/유전자 재조합 젖소 수정란 이식/형질전환 송아지 만들기에 성공/내년 인공수정·2000년 대량생산/축산·식품·의약등 응용분야 다양
이경광박사는 안면도에 「황금 송아지」 1마리를 키운다. 1마리에 16억원짜리면 「황금 송아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율을 1달러에 9백원으로, 다른 수치도 현실적으로 잡으면 20억원짜리다.
이 젖소의 이름은 「보람」(BOvine with Lactoferrin Assisted Milk)이다. 「보람」이가 이렇게 비싼 이유는 인간의 모유에 들어있는 락토페린과 라이소자임 등의 성분이 많은 젖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락토페린은 항균·항바이러스 등 면역증강작용이 탁월하고 세포증식 촉진, 철분 흡수 촉진, 방부성 등의 특성이 뛰어난 생리활성 단백질로, 분유·안약·지사제·영양제 등에 널리 사용된다.
「보람」은 다행스럽게도 젖을 낼 수 없는 숫놈이다. 암놈이면 당장 젖을 낼 수 있을 뿐이지만, 숫놈은 많은 암놈을 통해 새끼를 낳아 락토페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박사는 인간의 락토페린 유전자를 찾아낸 뒤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젖소 수정란의 핵에 넣고 동결시킨 뒤, 이것을 대리모 젖소에게 이식하여 송아지를 낳게 했다. 이것이 형질 전환 젖소다.
이박사는 이렇게 태어난 35마리의 송아지 가운데 1마리가 락토페린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젖소가 바로 「보람」이다.
「보람」이는 1살을 지나 내년부터 인공 수정으로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락토페린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이 유전자를 가진 암송아지들이 자라면 오는 2000년부터 인체 락토페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기대 가치를 고려하면 「보람」이는 축산업·유가공업·식품·의약품 등의 산업분야에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황금 송아지」다.<허두영 기자>
◇심사평/고려대 진정일 교수/수정난 동결 첫사례 호로몬등도 생산 세계적 성과 호평
이경광 박사가 개발한 락토페린 생산용 형질 전환 젖소 「보람」이는 네덜란드에 이어 두번째이며, 수정란 동결방법으로는 세계 최초의 사례다.
「보람」이는 락토페린을 비롯하여 라이소자임·성장호르몬·조혈세포 성장촉진인자 등 각종 생리활성물질을 대량 생산하는 세계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어, 이박사를 제 7회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장:진정일 고려대 교수
◇심사위원:장성도 이수화학 고문·강민호 한국통신 해외사업본부장·김진동 서울경제 주필·명효 고등과학원 부원장·박원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배무 이대 교수·변광호 생명공학연구소 소장·손병기 경북대 교수·손재익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선임부장·이대운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소장·이이형 한양대 부총장·전의진 과기처 연구기획조정관·정명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채영복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사무총장
◇프로필/집안반대 뿌리치고 고교·대학진학/도축장·목장·연구실서 숙식일쑤/형질전환 젖소와 생일도 같은 소띠
이경광 박사는 소띠(49년생)다.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과 지난해말 태어난 형질 전환 젖소 「보람」의 생일도 같은 날(11월 20일)이다. 또 올해 소의 해에 그는 「보람」이 락토페린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 「꽹과리」(경상도 사투리:경광이→갱광이→꽹과리)는 어릴 때부터 소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소년 「꽹과리」는 소꼴 먹이기 위해 새벽에 나섰다가 아침에 돌아와 학교 갔다온 뒤 해질녁까지 농사 일을 돕고 밤에 호롱불을 밝혀 공부를 했다.
공부할 필요없다며 아까운 기름을 낭비하지 마라는 아버지의 꾸지람에도 「그놈의 공부」가 하고 싶어서 이불 속에 호롱불을 감추고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에 가지 마라는 호통에 입학시험만이라도 한번 치게 해 달라고 졸랐다.
간신히 고등학교에 들어가 안동에서 「전기불 밑에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맛본 그는 대학 진학에서 다시 반대에 부딪혀 1년간 농사를 짓다가 일부러 미친 척하는 난동을 부린 끝에 간신히 대학 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으면서 가난에 찌든 농촌을 잘 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골몰했습니다. 그래서 뛰어든 분야가 동물발생공학입니다』
이박사는 동물발생공학을 『수정부터 착상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수정란이나 정자 가지고 「장난을 쳐」 인위적으로 동물을 만드는 연구』라고 설명한다.
그는 ▲인공적으로 쌍둥이를 만드는 일란성 쌍자동물 ▲수정세포의 핵을 대치하는 핵치환 복제 동물 ▲우성·열성 형질이 동시에 나타나는 키메라 동물 등 유전형질이 뛰어난 동물을 개발하고 대량 생산하는 연구를 택했다.
이박사의 꿈은 동물농장이다. 생명공학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유용한 각종 동물들이 뛰어 노는 농장이다.
따라서 실제로 그가 자면서 꾸는 꿈도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꿈에 돼지가 소처럼 크게 보이고, 개만한 소가 울어대고, 날개달린 말이 날아오르는 꿈이다.
그는 연구실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 도축장과 목장을 돌아다니며 수정란을 구하고 대리모를 살펴야 하고, 연구소에 돌아오면 연구실보다 실험실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는 최근까지 PC를 배우지 못한 「컴맹」이었다. 컴퓨터를 잘못 만지면 고장난다는 생각에 조심조심 다루고 끌 때도 겁이 나 컴퓨터를 잘 아는 연구원을 불러 꺼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한번은 밤중에 연구를 마치고 집에 갈 때 PC를 끄지 못해 퇴근한 연구원을 부를까 하다가 결국 PC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엔진인 「야후」 정도는 쉽게 한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우리 팀의 연구원들은 아마 속도가 가장 빠를 겁니다. 과속 딱지 한번 떼지 않은 연구원이 없습니다. 딱지 한 장에 벌금 6만원, 벌점 15점입니다』
대리모에게 이식할 수정란을 보온병에 담고 연구소에서 목장으로 갈려면 목숨을 걸고 과속으로 달릴 수 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정란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상금을 받으면 그동안 고생한 연구원들과 한번 실컷 놀겠다는 「꽹과리」박사는 이번에 「허리를 빙글빙글 돌리는 소춤」을 새로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허두영 기자>
◇뒷이야기/“주변설득 힘들었죠” 도축장 사발소주 신고식/학계 인식부족 더 난처해 동물복제 설명 산넘어 산
『제기랄, 일하는데 어떤 놈이 걸기적거려?』
소의 수정란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도축장을 찾았던 이경광박사는 아연실색했다. 갑자기 눈 앞으로 소잡는 시퍼런 칼이 휙 날아가 벽에 꽂힌 것이다.
도축장의 험악한 분위기는 일찍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칼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들은 소를 죽일 때 수정란을 연구용으로 따로 잘 보관해 달라는 이박사의 정중한 부탁은 들은채 만채 막무가내로 이박사를 도축장 뒤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술판부터 벌였다. 소주를 한 사발 따라 권하고 안주로 돼지 불알을 구워 내놓았다. 일종의 신고식이다.
평소에 술이라면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이박사였지만 사발로 마시는 소주와 돼지 불알 안주에는 선뜻 손이 나가질 않았다.
『어디, 양복쟁이가 우리랑 술먹남?』 누군가 침을 칵 뱉으며 빈정거렸다.
여기서 지면 연구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약을 마시듯 비장한 각오로 소주를 들이키고 독초를 씹듯 돼지 불알을 질겅질겅 씹었다. 그들은 소주를 한 사발 더 권했고 이박사는 두 사발 더 마셨다.
이로부터 이박사는 형질 전환 젖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박사가 굽실거려야 할 사람은 도축장의 도부뿐 아니다. 목장의 목부도 이박사가 모셔야 할 사람들이다.
목장에서 기르는 수백마리의 소 가운데 이박사가 관심을 갖는 소는 수정란을 이식받은 몇 놈이다. 혹시 목부가 고의든 실수든 애꿎은 소의 배라도 걷어차 배 속에 든 새끼를 유산시키면 「십년 연구 도로아미타불」이다.
도부와 목부를 설득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 편이다. 술로 친한 뒤, 명절마다 양주로 인사하고 때때로 담배값을 쥐어주면 된다.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대상은 연구비를 주기 위해 과제를 평가하는 학계의 전문가(?)들이었다.
지난 86년 일본 파견 연구를 마치고 돌아와 생명공학연구소에서 형질 전환 동물에 관한 과제를 신청한 이박사는 당시 동물발생공학에 관한 인식 부족으로 과제 내용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고통을 치러야 했다.
『쥐에게 인간 유전자를 이식했다가 인간의 지능을 가진 쥐가 태어나면 어떡하느냐』거나 『사람의 유전자를 동물에 집어넣는 비도덕적인 연구를 왜 하느냐』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정부 돈이라고 미친 짓 하면 안된다』며 비난하는 전문가(?)들을 설득하는 것은 도부나 목부를 설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 지금 이박사의 생각이다.
이박사의 설득작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올해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나면서 동물발생공학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대상들이 크게 늘어났다. 동물 복제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가진 정부와 국회 요직의 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허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