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가 되자 각종 모임이 여기 저기에서 열린다. 때가 때인지라 단연 화제는 대통령 선거다. 두 후보의 대립으로 좁혀진 탓인지 논쟁도 양쪽으로 갈려져 가열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동결된 상태라 관심의 초점은 가장 최근에 나타난 후보 지지도다. 그런데 그 궁금증은 세대에 따라 확연히 갈라지는 성향이다.
50대 이후의 세대들은 이회창 후보가 되느냐에, 20대와 30대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대간의 대립성향이 무슨 갈등 현상까지 나타내는 것 같지는 않다. 예의 지역감정에 비하면 진화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양극화 현상을 두 세대가 나타내고 있지만 그것은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뿐 혈연적 유대라는 튼튼한 끈으로 얽혀 있다.
유권자로서의 두 세대는 독립적 움직임이지만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 딸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자들인 것이다.
비록 대립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골 깊은 갈등으로 남을 수가 없다. 어느 세대가 현명했는가는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가지 유감이 있다. 후보지지 양극화 현상으로 대통령 선거가 지니는 깊은 뜻이 매몰되고 있는 점이다. 물론 후보들은 TV토론회를 통해 공약을 전하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좋은 것은 모두 우리 당 정책'이라는 백화점식 나열은 여전했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는 네거티브 세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지 후보의 이름 석자가 바로 이슈가 되어버리고 있다. 제3후보인 권영길 후보의 약진이 이름보다 공약 내용으로 회자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유권자들이 빠져있는 함정이 있다. 과거라는 창을 통해 선택의 기준을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시대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이냐가 선택의 요체인데도 말이다. 이제까지의 게임은 누가 덜 미우냐의 단순한 논리로 지배되어 온 면이 있다.
선택의 결과는 유권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나라의 유 소년층 인구는 약 1,300만 명이다. 이들은 투표권이 없다.
약 3,400만의 선대들에게 자신들의 투표권을 위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약속은 유권자에게 하고 있는 것이지만 교육 보건 노동환경 나아가 남북문제까지 이들 미래 세대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3일 후 세상의 아침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그것이 내 한 표에도 달려있다는 생각들을 해 볼 일이다.
손광식(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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