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업종 Inner View] 팹리스<반도체 설계>

2000년대초 영업이익률 20% 넘어 블루오션 각광<br>중복투자·과당경쟁에 '적자 신음'<br>신제품 연구개발비 부담 늘고<br>파운드리 업체와 협력도 부진<br>대기업 납품단가 인하압력에<br>영세업체들 버티기 힘들어져




팹리스(반도체 설계ㆍFabless) 산업의 성장성을 시사하는 바로미터로 여길만한 사례가 최근 잇따라 일어났다. 하나는 올 상반기에 연 매출 150억원(2006년 기준)정도 밖에 안 되는 고주파(RF)칩 업체인 에프씨아이가 대만의 글로벌 기업에게 1억 달러라는 고가에 팔린 것이고, 또 하나는 지난 6월 영상처리 신호 칩을 설계하는 연 매출 200억원 규모의 넥스트칩 공모주 청약에 1조6,000억원이나 되는 뭉칫돈이 몰렸다는 사실이다. 고도의 설계 기술을 필요로 하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고, 팹리스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도 전체 반도체 시장 성장률의 3배가 넘는 26%나 되는 만큼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국내 팹리스 업계 사정은 이 같은 산업의 전반적인 고속 성장 기류와는 전혀 딴판이다. 상당수 업체의 실적은 적자로 돌아섰고, 일부는 살아 남기도 버거운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산업의 성장세만 믿고 중복투자와 과당 경쟁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0년대 초반만해도 영업이익률이 20%를 웃도는 업체가 적지 않았을 정도로 블루오션으로 각광 받았지만, 이제는 영세 업체들의 제살 갉아먹기 경쟁이 판을 치는 시장이 돼 버린 것. 잘 나갈 때 규모를 키우고 매출처를 다변화하지 못한 결과는 그만큼 가혹하다. ◇개발 비용에 신음=팹리스 업체 가운데 영업이익률 10%를 유지하는 업체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 팹리스 업체 중 맏형 뻘인 엠텍비젼의 경우 2005년 매출 1,788억원에, 영업이익 344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1,185억원, 영업이익 80억원으로 급감했고, 급기야 올 상반기에는 70억원 적자를 냈다.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기기의 컨버젼스 추세에 따른 개발 비용 증가가 1차적인 원인이다. 일례로 과거에는 단순히 카메라 기능만을 지원하는 칩도 MP3ㆍ동영상ㆍ게임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을 가미해야 한다.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신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 비용 부담이 점점 더 커져 덩치가 작은 업체들은 경쟁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지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황기수 코아로직 사장은 "반도체 공정이 미세해져 가면서 설계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개발 기간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일정한 자금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정이 진화하면서 1개의 칩 개발 비용이 지난해의 2배 수준인 10억원에 이른다"며 "특히 칩 개발 수요도 IT기기 진화로 훨씬 많아졌다"고 전했다. ◇파운드리 업체와 협력도 후진적=팹리스는 반도체 칩만을 설계해서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의 생산라인을 빌려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업체다. 제품 생산 원리상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대부분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이 단가 등을 이유로 반도체 생산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 팹리스 업체로서는 물류비와 하자 발생시 대응이 떨어지는 단점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글로벌 시장에서 파운드리 업체와 지분제휴 및 업무 협약에 적극적인 대만 업체에게 밀리게 된다. 실제 대만의 선두권 팹리스 업체 실적을 보면 분기 매출만 4,000억원 수준으로, 국내 업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다 상생과는 한참 거리가 먼 국내 대기업의 납품업체에 대한 고질적인 납품단가 인하 압력도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중형 팹리스 업체 임원은 "대만 팹리스 업체의 경우 매출처가 분산돼 있는 데 비해 국내 업체는 대부분 삼성 등에 편중돼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칩의 납품 마진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밖에 그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인정돼 온 반도체 시제품 포토마스크 비용에 대해 지난해부터 과세가 이뤄지고 있는 점도 업계의 불만 사항이다. 업계 관계자는 "팹리스 업체와 같이 커가야 하는 국내 파운드리 업체의 실적이 좋지 않은 데다, 정부의 팹리스 업체에 대한 R&D지원도 부족하다"며 "인수합병(M&A) 등으로 규모를 키워야 파운드리 및 세트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팹리스(Fabless)란 팹리스(Fabless)업체는 공장(Fabricatin: FAB, 일관생산공정)이 없는 반도체설계 전문회사를 말한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반도체 칩을 설계, 이를 파운드리업체(수탁생산공장)에게 맡겨 생산토록 한다. 글로벌 팹리스 업체로는 퀄컴, 브로드컴 등이 있으며 국내에는 엠텍비전, 코아로직, 텔레칩스 등의 선두기업을 포함 200여개의 업체가 있다.
대부분 영세… M&A로 활로 모색해야

위기에 처해있는 국내 팹리스 업계의 생존의 핵심은 M&A다. 업계 대략적인 추산에 따르면 국내 팹리스 업체 수는 대략 200개사, 이 중 매출이 수십 억원 이상인 곳은 많아야 20개 정도에 불과할 만큼 영세하다. 개발 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영업 환경을 견뎌내려면 이들 업체의 구조조정과 M&A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대형업체는 원가경쟁이나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맡길 때 물량이 많아야 비용이 줄어들고, 세트업체에 칩을 공급할 때도 납품 수량에 비례해 입김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규모의 경제가 절실하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대만 등 해외 파운드리를 이용해서는 아무래도 원가 경쟁력에서 쳐진다는 것.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 여건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파운드리 육성 없는 팹리스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의 팹리스 업체에 대한 M&A 가능성이 자주 언급되고 있고, 파운드리 업체인 동부일렉트로닉스가 팹리스인 토마토LSI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파운드리와 팹리스 간 제휴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업계 전반의 청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