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9월 3일] 상생, 멀고도 험한 길

10년 넘게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해온 최모 사장은 올해초 신사업에 진출하려고 사내에 별도의 팀까지 꾸려 몇달간 시장 조사를 벌이다 뜻밖의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 시장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는 분야마다 대기업들이 손대지 않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부분 대기업과 이런저런 연줄을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름 경쟁력을 갖추고 뚫고 들어갈만한 틈새시장을 찾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최 사장은 기자를 만나 이 같은 얘기를 전하며 고심하던 끝에 결국 신사업 진출의 꿈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구조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 곳곳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치열한 영역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성장 정체의 한계에 부딪힌 대기업들은 한때 핵심두뇌까지 끌어모아 뭔가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시장성이 검증된 안전한 영토를 찾다보니 결국 비좁은 내수시장에서 중소기업들과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특히 MB정부의 녹색성장 바람을 타고있는 태양광이나 LED시장, 풍력 등 그린산업의 경우 대기업들의 잇따른 참여로 벌써부터 과당경쟁 구도까지 빚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연구개발이니 인증 획득에 밑천을 다 쏟아부었는데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적자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더욱이 시장을 싹쓸이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무리한 가격 인하는 결국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 품목의 경우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분류됐지만 대기업들은 별도의 계열사를 세워 빈틈을 노리고 있으며 애초에는 특화제품만 취급하겠다고 해놓고 우회 판매방식을 동원하는 등 과거숱하게 보아왔던 풍경이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물론 일찍이 폐지됐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사례에서 보듯이 특정 사업영역에 칸막이를 쳐놓고 진입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과거 같은 보호막이 더 이상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하지만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갖춘 기업이라면 해외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거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비싼 로열티를 지키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도 귀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지켜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대목도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때문에 대기업도 이제는 단지 시장원리만을 내세워 무분별하게 사업영역을 넓히기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중소기업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나름의 고유 영역을 개척해 중소기업을 인도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사업에 진출할 때 해당 분야의 중소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소중한기술력이나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저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우리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나 복지문제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참가자의 자유롭고 공정한 기능이 중요하지만 시장경제를 제대로 꽃피우자면 한국사회에 윤리라는 자양분이 필요하다는 것도 새삼 생각해볼 때가 됐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도 최근 “이제까지는 열심히 하는 것으로 경제성장을 했지만 한단계 더 성장하자면 공정한 사회가 아니면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마침 정부는 사업영역 갈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상생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어떤 대책이 나오더라도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에 앞서 대기업들이 성숙된 사회에 맞춰 공존의 살길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정상범 성장기업부장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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