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97년 반환이후 뉴욕-홍콩시장 '전쟁'은…

월街 헤지펀드 공세도 '홍콩달러'는 못뚫었다<br>홍콩 단기금리 300%로 올려 대응<br>국제 투기자들 거꾸로 美주식 투매<br>장쩌민, 10월 뉴욕증시 방문으로 화해



150년동안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이양된 지난 97년 7월 1일 이후 뉴욕 금융시장과 홍콩 금융시장 사이에 일대 전쟁이 벌어졌다. 중국은 세계 5위의 금융도시를 인수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하는 ‘1국 2체제’를 과시하려 했다. 소련 붕괴후 미국 주도의 국제 금융질서를 비집고, 공산주의 대국이 부양하는 금융 센터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실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 금융의 심장인 뉴욕 월가는 홍콩 시장의 인위적 팽창을 가만 보고 있질 않았다. 홍콩의 주권이 이양된 다음날인 7월 2일, 월가의 헤지펀드들은 중화 경제권의 외곽인 태국 바트화를 무너뜨렸고, 필리핀 페소, 말레이시아 링기트, 인도네시아 루피아를 차례차례 무너뜨렸다. 그해 8월 중순, 국제 투기자들은 다음 타깃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싱가포르발 기사에서 “동남아 통화가 평가절하되자 국제 외환거래자들은 다음 타깃은 누구인가를 논의했다”며, “그것은 홍콩 달러였다”였다고 보도했다. 곧이어 외환 투기자들은 홍콩 달러를 공략했다. 그러나 홍콩은 동남아 국가들보다 맵집이 강했다. 보유외환이 많았고, 동남아 국가에 비해 펀더멘털이 좋았고, 무역 흑자국이었다. 게다가 홍콩의 금융인들은 월가의 투기수법을 내리 꿰고 있었다. 홍콩의 무기는 이자율이었다. 10월 23일 드디어 홍콩 정부는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단기금리를 300%로 올린 것이다. 경제원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금리 300%를 감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자 투기자들도 많은 피를 흘렸다. 투기는 한번 성공하면 떼돈을 벌지만, 실패하면 패가망신한다. 단기 자본을 운영하던 헤지펀드나 뮤튜얼펀드의 일부는 홍콩에서 물린 돈을 갚기 위해 미국 주식을 대량 투매했다. 10월 27일 홍콩 공략에 실패한 국제 투기자들은 거꾸로 미국 주식을 투매했고, 이날 다우존스 지수는 554 포인트(7.18%)나 폭락했다. 지수 상으로는 최대, 낙폭으로는 10년전 블랙먼데이 이후 두 번째였다. 일본 증시 폭락과 독일 경제 침체기에도 끄떡치 않았던 뉴욕 증시가 홍콩의 충격에 간단하게 무너졌다. 그 이유는 바로 중국이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화해가 필요했다. 그해 10월 31일 장쩌민 국가주석은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 오프닝벨을 울렸다. 그의 방문으로 월가 투기자들이 홍콩 공략을 중단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 이후 투기자들의 공격목표가 바뀐 것만은 분명하다. 그다음 목표는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은 금융시스템이 와해되고 있었고, 은행과 기업들의 단기 외채가 1,000 달러에 이르렀다. 한국은 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홍콩에서 손해를 본 투기자들은 한국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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