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살 없는 늘씬한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된 후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도 퍽 인상적이다. 조곤조곤, 차분히 풀어내는 그의 얘기에 도회적이고 차가울 것만 같던 막연한 선입견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는 16일 데뷔 13년 만에 칸 국제 영화제 첫 레드카펫을 밟게 될 배우 김효진(28ㆍ사진)을 만났다.
99년 모 이동통신사 CF를 통해 15세의 나이로 데뷔, 인기와 명성을 위한 직구보다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며 차근차근 연기의 외연을 넓혀온 그다. 그래서일까.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에 비해 대중에게 배우 김효진을 제대로 각인 시킬만한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2012년, 김효진은 감독 임상수를 만나 배우로서의 깊이를 한층 더 드러낸다. 스스로도 이번 작품을 "지금까지 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부푼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1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돈의 맛'에서 김효진은 재벌가의 핏줄을 타고 났지만 돈에 죽고 못 사는 가족과 달리 돈의 맛을 거부하는 당돌한 이혼녀(윤나미)로 분한다. 그가 윤나미라는 캐릭터를 처음으로 마주한 때는 9월. 한·중·일 합작 드라마 '스트레이드6'의 촬영을 마치고 결혼 준비에 한창일 때 '돈의 맛' 시나리오를 손에 쥐게 된다.
"나미라는 캐릭터가 참 매력 있었어요. 무엇보다 임상수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어요. 이미 그 자체로도 대단한 배우임에도 감독님은 늘 그 배우의 숨겨진 또 다른 매력을 끄집어내세요."
물론 윤나미라는 인물로 제대로 옷을 입을 때까지 나름의 고충도 있었다.
"윤나미라는 캐릭터가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에요. 지금 자신에게 놓인 상황에 대해 미치도록 화를 내고 싶어도 감독님은 오히려 비틀어서 화를 누르고 차분히 미소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중적인 감정을 표현하기가 처음엔 참 쉽지 않더라고요."
함께 출연하는 다른 주연 배우에 비해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서 유별나게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윤나미)을 연기 하기가 만만치만은 않았을 터다. 그러나 힘들었던 만큼 그는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세계 대표 영화제에 당당히 첫 발걸음을 내딛는 영광을 안게 됐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진지해지고 열정이 많아진 지금의 모습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는 그다. 김효진은 그렇게 배우로서 미완의 그림을 차곡차곡 메워 나가고 있었다. 문득 그의 완성작은 어떠할 지 궁금해졌다.
"늘 생각해요. 제가 만약 윤여정 선생님 나이가 됐을 때 이번 영화에서 선생님이 맡은 백금옥이라는 역할이 제게 똑같이 주어진다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요. 윤여정 선생님처럼 오래 연기 하고 싶어요. 그냥 단순히 '오래'가 아니라 카메라를 들이대면 나름의 기운과 아우라가 넘치는 배우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