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 폐지(논쟁)

대규모 기업집단 제도는 존속시켜야 하는가, 축소해야 하는가. 전경련이 최근 30대그룹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 대상그룹을 지난해 자산기준 총액 20조원이상 또는 5대그룹으로 축소운영해달라고 정부에 제의한 것을 계기로 이 문제가 새로운 쟁점이 되고 있다. 전경련은 규제철폐와 자율경쟁을 내세우며 하루속히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대상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경련은 아직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 1차로 5대그룹으로 축소운영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계열사간의 상호지보 등으로 공정경쟁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며 아직은 시가상조라는 반응이다. 특히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재벌들의 계열사간 불공정 지원 등에 대해 규제를 가할 여건이 안돼있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다고 공박하고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 제도의 축소를 주장하는 전경련과 존속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정부의 입장을 들어본다.<편집자주>◎찬성­경영혁신·구조조정 촉진/채무보증 금융기관이 판단, 정부간여 말아야/출자기준 모호 투자시기 기업자율성 침해도/기업공시·외부감시제 강화로 자율규제 여건성숙 경쟁우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초경쟁시대에서는 기업은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끝없는 자기변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각국 정부는 국익 증진을 위해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여, 기업활력제고를 위해 규제혁파와 민영화는 물론이고 정부 조직 및 사회보장제도의 개혁까지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예로 일본은 행정, 금융, 재정개혁 등의 5대개혁을 추진하면서 그간 성역시해온 지주회사 부활등 공정거래법상의 규제도 과감하게 완화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기업활동에 대한 핵심규제가 완화되지 않은 채 새로운 규제가 계속 도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우리는 OECD에 가입하여 국내시장이 사실상 완전 개방되어 경제국경이 없어졌으며 시장규모나 법위가 무차별적으로 확대, 과거와 판이하게 다른 시장여건과 경쟁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따라서 그간 주로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해온 각종 제도는 국제규범에 부합되도록 개선돼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30대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출자와 채무보증 등 기업본영의 활동을 규제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제도는 OECD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쟁을 제한하며 기업간의 불공정경쟁을 조장하는 성격을 띄고 있어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을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하겠다. 더욱이 경제력집중 억제제도가 도입된지 10년이 지났으나 그 실효성은 미미하다는게 각계의 중론이다. 이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정서 등을 바탕으로 무리하게 경제외적 논리로 정책을 추진한 결과라하겠다. 이러한 대규모기업집단지정제도는 지정기준이나 운영면에서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자산순위 30위까지 지정하는데 그 기준의 근거가 애매하다. 더욱이 30위로의 진입여부가 기업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의 성과에 결정된다.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출자총액과 채무보증 등이 규제되는데 지정에 따른 예측가능성이나 자기책임이 없는데다가 합리성이 결여된 기준에 의해 성장의 기회가 차별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수 없다. 출자규제도 순자산의 25%로 정하는 근거가 없는데다 기업의 투자시기나 규모 등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무리한 출자로 효율이 저하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기업이 결정하고 그 위험을 부담할 일이지 입법으로 규제할 사안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출자제로 합병, 신규사업진출 등 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체되어 급변하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채무보증은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의 대출관행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금융기관이 판단할 문제지 정부가 간여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금융기관의 자율적 대출심사강화가 선결과제라 하겠다. 따라서 대규모 기업집단제도는 원칙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공정거래법은 경쟁촉진법으로 전환해 경쟁저해 행위의 개선에 초점을 두고, 대신 재무구조 개선과 소유분산등 현재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에 포함된 것은 금융, 조세 등의 제도로 해결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제도의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으므로 그 대상을 우선 5대 그룹으로 축소하는 것이 차선책이라 하겠다. 5대 그룹은 자산, 매출등 경제력이 30대 그룹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이들 그룹만을 지정해도 경제력집중 억제제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하던 여신관리제도는 이미 대상을 10대 그룹으로 축소한 바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이 5대 그룹으로 축소될 때 위축될 경제의욕을 회복시키고 구조조정을 촉진시켜 지금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폐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무리한 출자를 막을 수 있도록 먼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금융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최근 기업공시제도의 회부감사제도가 강화되고 소액주주권 요건이 완화되는 등 경영의 투명성 제고장치가 크게 정비되어 이해관계자의 자율에 맡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하위그룹 일수록 무리한 출자가 많아 5대그룹으로 축소할 경우 기업의 부실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기업자율에 맡겨 투자의 결과에 책임지게 하면 된다. 결국 대규모 기업집단의 축소조정이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강화와 경제난 타개의 지름길이라 하겠다. □약력 ▲53년 경북 영덕 출생 ▲고대 법학과 졸 ▲미 헤리티지재단 파견근무 ▲전경련 산업정책실장 ◎불공정경쟁 조장 안될말/계열사간 출자 등 오히려 문어발식 확장 심화/경영투명성 기업내·외부감시기능 아직 미숙/산업합리화위한 채무보증은 한도초과 이미 인정 최근 전경련은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이 도입 당시에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으나 경제력집중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관련제도가 보완되고 있고 기업의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므로 폐지하거나 5대 그룹으로 축소·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 경제·사회여건이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을 폐지 또는 축소해도 좋을만큼 성숙되어 있고 또한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이 기업의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이후 세계는 바야흐로 국경없는 소위 대경쟁의 시대(Mega­Competition)를 맞이하고 있다. 상품, 용역, 생산요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세계경제는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경제구조로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현실은 어떤가. 한보, 우성, 삼미, 진로, 기아 등 대기업집단들이 도산 또는 도산위기에 처해있고, 이로 인해 협력회사, 하청회사들의 연쇄도산과 실직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기자본의 수배 내지 수십배에 달하는 자금을 차입하여 기업확장에 치중해 온 기업들이 도산함으로써 금융시장마저 불안하게 하고, 국가경제운영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극심한 불황을 겪었던 오일쇼크 때에도 잘 버티어 왔고 오히려 사업을 확장해 왔던 재벌그룹들이 그때보다 제반여건이 훨씬 양호한 지금 연이어 도산하고 있는 것은 외부요인보다는 우리 기업 자신의 문제에 기인한다. 즉, 오늘의 부도사태는 과도한 부채에 의한 무분별한 사업확장, 방만한 경영, 경영권 세습으로 인한 후계 경영자의 경험부족, 계열사간의 상호채무보증·출자에 의한 선단식경영 등이 누적되어 나타난 고비용 저효율구조의 당연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진로그룹」의 경우 부채비율이 3,608%에 달하는데 이것은 자기자본에 비해 부채가 36배나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채무보증구조가 진로그룹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기업집단별로 2∼3개 주기업체의 채무보증금액이 기업집단 전체채무보증의 83.3%를 점유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30대 기업집단 모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데 있다. 최근의 진로, 한보 등과 같은 사례가 여타 기업집단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경영의 투명성 확보장치와 경영 감시체제가 오랜 세월을 거쳐 잘 확립되어 있어 이와 같은 무분별한 기업행태는 시장기능에 의해 자율적으로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즉, 기업의 내부통제장치인 주주총회, 이사회, 감사제도, 외부통제장치인 채권금융기관들에 의한 경영감시, M&A시장 등이 잘 발달되어 있어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에 의한 무분별한 출자 등의 가능성은 없다. 소수가족에 의한 대규모기업집단의 소유·지배나 선단식 경영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도 없으며 계열사간의 채무보증도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감안하여 최근 경영의 투명성 확보, 경영에 대한 내·외부감시체제 확립 등 자율규제를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문제제기 단계에 불과하여 단기간내에 그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의 핵심제도인 출자 및 채무보증제한제도는 기업의 개별적인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며, 총량만을 제한함으로써 기업으로 하여금 일정한도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여 합리적으로 출자 또는 채무보증을 하도록 유도하여 차입에 의한 무분별한 계열기업 확장을 막고, 기업집단 내부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 지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가 기업의 건실한 투자의욕을 저상하지 않도록 SOC 사업을 위한 출자, 산업합리화 및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출자나 채무보증에 대해서는 한도초과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의 적용을 30대 그룹에서 5대 그룹으로 축소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채무보증 및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의 적용 필요성은 상위그룹보다 오히려 하위그룹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5대 그룹의 평균적인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은 247.5%인 반면 21∼30대 그룹은 463.5%로 상위그룹에 비해 2배나 많고 출자비율도 5대 그룹은 25.0%인 반면 21∼30대 그룹은 45.2%로 크게 높다. 이와 같이 최근 대규모 기업집단이 외형위주의 기업확장과 재무구조의 악화로 부도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러한 기업집단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계열기업 상호간의 채무보증행위가 얼마나 이들 기업집단의 구조조정과 부실계열기업의 정리를 어렵게 하는 지를 실증적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왜 전경련이 이러한 문제들을 시정하고 기업운영의 내실화를 기하도록 유도하는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을 폐지하거나 그 적용대상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약력 ▲53년 강원 횡성 출생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서섹스대 경제학석사 ▲공정거래위 기업집단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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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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