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Si)과 알루미늄(Al)으로 이뤄진 결정형 광물인 제올라이트(Zeolite)는 결정 내부에 작은 분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들이 규칙적으로 뚫려 있다. 이 작은 구멍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촉매 활성점이 있어 반응 대상 분자들이 드나들 때 촉매 작용을 일으킨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제올라이트는 가솔린 생산 등 각종 석유화학산업 전반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촉매제다. 하지만 기존 제올라이트는 결정 내부의 구멍 크기가 1nm(10억분의1m) 이하로 매우 작아 큰 분자가 드나들기 힘들고 이 때문에 반응 대상 분자의 확산 속도가 느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지난 1992년 미국의 엑손모빌사 연구진이 구멍 크기를 30nm까지 조절할 수 있는 제올라이트 물질을 개발했지만 비결정질이어서 촉매제로서 효율이 크게 떨어져 상용화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여년 동안 국제 제올라이트 학계에서는 결정 구멍 크기를 키우고 작은 구멍(마이크로 나노기공)과 그보다 더 큰 크기의 구멍(메조 나노기공)이 동시에 규칙적으로 배열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숙원이었다. 이 숙원을 국내 연구진이 해결했다. 유룡(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팀은 큰 구멍과 작은 구멍이 벌집 모양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제올라이트 신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15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 신물질을 특수 설계한 계면활성제를 사용해 합성했다. 계면활성제(surfactant)는 물에 녹기 쉬운 친수성(親水性) 머리 부분과 물을 싫어하고 기름에 녹기 쉬운 소수성(疏水性) 꼬리 부분으로 이뤄진 유기 분자다. 제올라이트 원료에 이 특수 계면활성제를 넣자 제올라이트가 계면활성제 분자 머리 부분을 둘러싸 제올라이트 결정의 골격이 만들어졌고 긴 꼬리 부분들이 모인 곳에는 보다 큰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후 이 계면활성제를 태워 없애자 제올라이트 머리 부분이 있던 곳에는 작은 구멍이, 꼬리 부분이 모여 있던 공간에는 큰 구멍이 남았다. 두 가지 크기의 구멍이 동시에 규칙적으로 존재하는 이 벌집모양의 제올라이트로 촉매 성능을 시험한 결과 기존 제올라이트에 비해 효율성이 작게는 25%, 크게는 77%나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제올라이트는 이상적이고 안정적 기공 구조를 갖고 있어 기존 제올라이트의 단점을 충분히 보완했다"며 "앞으로 산업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화학 반응 과정에서 고성능 촉매제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권위있는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ience)'지 7월15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