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검소한 백만장자/김인영 뉴욕특파원(기자의 눈)

세 자녀를 둔 57세의 가장. 평생동안 한번도 50만원 짜리 양복, 15만원 짜리 구두, 90만원 짜리 시계를 사보지 못한 사람, 출고된지 3년이나 된 중고차를 모는 사람, 일주일에 45∼55시간 일하며 할인쿠폰을 꼬박꼬박 모으는 사람….서울 강남에서 이런 부류에 속한다면 아마 성공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직장에서 그 흔한 과장 한번 못하고 평직원으로 정년을 맞는 직장인도 이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이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백만장자의 평균치라면 한번쯤 생각을 달리해 볼 일이다. 요즘 미국에선 조지아 주립대학의 토머스 스탠리 교수와 올버니 대학의 윌리엄 당코 교수가 공동저술한 「백만장자 이웃(The Millionaire Next Door)」이라는 책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0년동안 미국의 부자를 연구해온 두 학자는 재산 1백만 달러(8억원 상당) 이상의 부자 1천여명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한 결과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미국 백만장자의 90%는 1천만 달러(80억원 상당)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연평균 수입이 13만1천 달러(1억원 상당)에 이른다. 재산이나 소득에선 엄청난 부자임에 틀림없지만 씀씀이에선 이웃집 사람 같이 검약하다는게 이 책의 결론이다.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미국 부자들의 검소함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얼마전에 만난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어느 부사장은 두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출퇴근 하고, 세계 최대반도체회사인 인텔의 앤디 그로브 사장은 손수 자동차를 몰고 출퇴근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 엔고 덕분에 돈방석에 올라간 일본인들이 하와이의 저택과 캘리포니아의 영화사를 사들일때도 미국 부자들은 검약을 강조했다. 미국이 90년대 들어 다시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은 배경으로 우선 기업들의 피나는 다운사이징과 기술혁신을 들수 있지만 부자들의 검소함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엔 백만장자가 엄청나게 많다. 올들어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 씀씀이가 큰 한국손님들은 미국에서 여전히 큰 고객이다. 그런 졸부들에게 몇10달러면 살 수 있는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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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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