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03> 금요일, 그리고 시간의 가치


술값은 외상으로 달아도/인생은 외상으로 살 수가 없어/오늘도 그대 떠나는 님을

붙잡지 못한다/망설이며 뒤돌아보지 마라/세월은 돈으로 살 수가 없어


행복도 사랑도 잠깐/손 저으며 저만치 떠나는 그대

[문병란 연작시집 ‘금요일의 노래’ 중 ‘외상]’


금요일입니다. ‘불금’ 이야기에서도 다루었지만, 한 주의 고단함을 마무리하고 주말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금요일이 생기게 된 기원은 매우 독특합니다. 금요일은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의해 처형된 후 사흘 만에 일요일에 부활했다는 믿음에 따라 만들어진 종교문화적 시간입니다. 예수는 목요일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고 그들 모두의 발을 씻겨주고 사랑을 전합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기도하다가 그를 배신한 옛 제자 유다와 로마 군대에 의해 끌려가 죽음을 맞이할 운명에 처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불금’을 즐기지만, 그 기원 자체는 매우 섬뜩한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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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과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죠. 최근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에는 돌아오렴’이라는 제목의 북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가면, 어머니가 따뜻한 저녁을 차려주신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겁니다. 그런 따뜻함을 맞이할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농축된 ‘금요일’은 이태원이나 강남에서 먹고 마시며 흥겹게 보낼 수 없는 처절한 시간입니다.

시간은 돈이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하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얼마나 소중하면 화폐효용으로 시간을 따졌겠습니까. ‘이런 시급’이라는 광고가 화제가 되었던 것도 떠오릅니다. 아르바이트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시간 수당을 지급할 수 없는 현실을 어느 어플리케이션 광고가 풍자한 겁니다. 시간의 절절하고 안타까운 의미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결국에는 돈으로 그 가치를 대리변수화해 보여주어야 하는 게 오늘의 상황입니다.

어쩌면 시간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적으로 합의한 대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정치, 경제 어느 면에서나 시간은 그 상황에 개입하고 있는 수많은 참여자들에 의해 통제됩니다. 시간을 잡고 있는 사람은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리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오늘날도 어른이나 윗사람과 약속을 잡을 때는 먼저 언제가 괜찮은지를 물어보고, ‘스케줄 보고 알려주겠다’는 모호한 답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인가 봅니다.

2000여년 전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일주일의 의미가 완성되었듯, 우리의 시간도 가끔은 배려와 따뜻함이 있었으면 합니다. 여야가 그동안 길게 끌고 왔던 공무원 연금 개혁 논의를 본격적으로 검토한다고 합니다. 1년이 지나서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보상 방법과 후속 대책이 이야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외상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마음과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떠나는 님을 붙잡지 못하고, 망설이며 돌아보는 일이 없도록 오늘은 배려와 감사의 시간을 나누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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