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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설/6월 11일] 英 노동당 경선, 즐기는 시간 아니다

13년 만에 보수당에 정권을 내준 영국 노동당이 새로운 당수를 뽑는다. 후보자들이 9일 등록을 마친 후 치열한 혈전을 벌일 기세다. 5명의 후보자들 가운데 2명은 형제다. 또 다른 후보는 고든 브라운 전 총리를 지지하는 매파의 새로운 리더 에드 볼스 전 초중등교육장관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일한 여성 후보이자 소수민족 출신인 다이앤 애보트는 미디어를 잘 다루며 골수 좌파다. 이번 당권 경쟁은 지적인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노동당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지난 1998년 사회 정의와 다이내미즘, 성장과 복지, 공정함과 기업 활동 등을 동시에 원한다고 밝혔다. 진보주의 철학자 로드 달렌도르프는 이런 블레어주의를 비판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선택사항들을 일단 말해버린 뒤 부지런히 그것들을 피해 다녔다는 이유에서다. 노동당은 무엇을 우선사항으로 선택할지에 대한 전략이 부족하다. 이는 건강보험 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노동당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탓에 국민의료보험서비스(NHS)에 모든 것을 위임했다. 그래서 정부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만약 노동당이 무엇을 우선과제로 추진할지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비용 삭감도 단행할 수 없다. 그리고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절반을 차지하는 정부 지출을 끝까지 끌고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노동당은 무책임할 정도로 느슨한 회계 정책을 내놓거나 세금폭탄 인상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덫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최근 노동당 정책 가운데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을 리스트로 만든 후 당장 폐기해야 한다. 아울러 효과가 떨어지는 정책을 추려내 그 분야의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내는 일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며 노동당의 정체성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당 대표 경선은(결과는 9월 말에 발표된다) 후보자들이 재정 적자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교환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또 노동당 지지자들은 노동당이 지출 삭감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노동당은 다음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다. 이번 경선은 노동당에 그저 마음껏 즐기는 시간이 아닌 임무를 재발견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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