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소비자 외면한 가격혁명

“유통의 유(流)자도 모르는 말입니다.” 유통업체 자체브랜드(PL) 상품이 골든존(golden zoneㆍ제품 소비층에 맞는 눈높이의 판매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불공정거래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형마트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답한다. 유통의 ‘유’자가 ‘흐를 유’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최근 이마트의 대대적인 PL 상품 출시 이후 대형마트의 상품 진열이나 판매는 도대체 흐르지 않고 PL 상품에만 고여 있는 것 같아 해본 질문이다. 이마트 매장에서 쌀과자를 찾으려면 누구나 아는 1위 제품은 찾기 어렵다. 대신 이마트에서 PL로 만든 쌀과자가 거의 유사한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코카콜라를 사려면 이마트 콜라 사이를 한참 비집고 들어가 찾아야 한다. 사고 싶은 상품을 쉽게 살 수 없는 구조다. 유통의 유자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마트에는 상품이 흐르지 않는다. 이마트의 PL 상품 출시 발표 후 세간의 관심은 온통 제조업체와 이마트 간의 싸움에 쏠려 있다. 정작 물건을 사서 쓰는 소비자는 뒷전이다. 결국 PL 상품의 성공이나 실패는 소비자의 몫인데도 아마트나 제조업체나 제 목소리 내기에만 바쁘다. 제조업체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는 진열도 소비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1등 상품이었으니 당연히 골든존에 배치돼야 한다는 쪽과 대형마트 이름의 PL 상품이니 판매를 늘리기 위해 골든존에 상품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각을 세울 뿐이다. 정작 무엇이 진정한 소비자의 선택권인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유통은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상품이 흐르는 것 아닐까. 따라서 유통업체의 매장 내 상품 진열은 유통업체 고유의 권한이 아닌 소비자의 선택에 기반을 둬야 한다. 지금처럼 PL 상품이 기존 제품의 포장지만 바꾸고 가격만 싸게 한다고 해서 무조건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판매대 진열도 소비자 권리에 우선해야 한다. 지난 80년대 초반 월마트와 P&G도 납품가격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두 거대 기업이 내놓은 해결책의 근본은 소비자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었다. 월마트는 매장 내 상품 판매에 대한 생생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P&G는 월마트 전속 ‘커스터머 팀(customer team)’을 만들어 적기에 월마트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공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마트가 생존전략으로 내놓은 PL 상품이 소비자 선택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새로운 상생모델로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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