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짙은 불황 저편엔 21세기의 번영이 있다”/자동차 산업

◎자동차 「위기돌파」 경영/판매부진­과당경쟁­수지악화 악순환/비용절감·생산성운동으로 극복지난 3월24일 저녁 인터컨티넨탈호텔 일식집 「미야마」. 정몽규 한국자동차공업협회장이 『아산공장을 공개하겠다』고 제안해 차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진 최고경영자 단체 공장방문이 끝난 뒤 참석했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다. 정회장을 비롯해 김석준 쌍룡그룹회장, 한승준 기아자동차부회장, 조래승 아시아자동차부회장, 양재신 대우자동차사장, 김영석 아시아자동차사장, 이종규 쌍룡자동차사장, 박정인 현대정공사장 등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움직이는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 경영자는 『이날 최고경영자들의 대화주제는 걱정이었다』고 전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우리가 방문한 공장에 쌓여 있는 자동차 재고는 경영자들의 심정을 대변했습니다. 차는 쏟아져나오는데 판매는 안되고 그런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자동차 규제책」을 만드는데 「열심」이라는 둥 걱정과 하소연이 많았습니다.』 올들어 3월말까지의 재고가 8만5천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동차업계 최고경영자들의 이런 모습은 너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판매는 극심한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월까지 국내 판매실적은 18만5천2백45대.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5만3천52대에 비해 27% 가량 줄어든 것이다. 물론 1월의 예기치 못한 「노동법파업」이 주요인이 됐지만 정상생산에 들어간 2월 이후 3월 들어서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당초 업계가 내다본 올해 시장전망은 1백75만대 내외. 지난해 보다 5% 남짓 늘어난 성장률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실적달성도 힘겹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업계의 판매목표는 2백20만대를 넘는다. 더구나 생산규모는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말 현재 국내 자동차 총생산 규모는 3백49만6천대, 실제 생산은 2백80만대 정도에 달했다. 그런데 올들어 이 규모는 4백15만대로 급증했다. 현대의 아산공장, 대우의 군산공장이 가동됐다. 생산규모 증가­판매부진­재고누적­과당경쟁­판매조건 완화­경영수지 악화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는게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구조다. 여기에 「분규1번지」인 자동차업계의 노사협상 전망은 회색이다. 경총은 총액임금동결을 임금가이드라인으로 선언했다. 이 선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동차 업체는 몇곳이나 될까. 당장은 지난 2월 무쟁의선언을 한 쌍용 정도가 고작이다. 노동법분쟁에서 조용한 행보를 유지한 대우도 기대할 만하다. 나머지는 분규·생산차질의 연례행사를 되풀이하면서 부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수출의 숨통을 죌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부정적 상황은 결국 지난 80년에 이어 다시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자동차산업이 거론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국내업계는 심각한 질문 앞에 서게 됐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라며 선진국들의 질시어린 견제 속에서 결코 제기되지 않을 것 같던 「회의적 전망」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박병재사장은 「15년만의 최대위기」라고 규정했다. 그만큼 불황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업계의 최대관심사는 이제 불황돌파가 됐다. 이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떤 기업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위기상황이다. 이에따라 각 업체들은 사활을 걸고 탈불황에 나서고 있다. 그 양상은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며 다양하다. 업계는 판매확대를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현대, 기아, 대우 등 승용차 업계 판매담당자들은 요즘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판매가 안되니 할부이자를 낮추고 주주들에 대한 제한적 판매이긴 해도 3∼5%의 가격할인도 하고 있다. 개인별, 부서별 판매량이 할당되고 있으며 전 그룹 차원에서 「1인당 한대 팔기」운동도 동원되고 있다. 「신차붐을 조성하라.」 판매를 늘리기 위한 자극제로 업계는 잇달아 신차를 내놓고 있다. 경쟁적으로 신차발표회를 개최, 신차붐 조성에 안간힘을 쏟아 어느 정도의 효과는 거두고 있다. 대우의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 「3형제」를 비롯, 현대의 뉴엑센트·스타렉스, 현대정공의 갤로퍼Ⅱ 등은 불황의 한파를 녹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시장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판매부진의 돌파구로 눈물겨운 허리띠 조르기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현대, 기아, 쌍용, 아시아 등 주요업체 임직원들은 잇단 결의대회 등을 통해 ▲임금동결 ▲생산성향상 ▲경비절감 ▲상여금 및 급여 일부 반납 ▲토요휴무제 폐지 ▲휴일반납 ▲현장 임원회의 ▲1시간 일 더 하기 등 전에 없던 「생산성향상 및 줄이기운동」을 펴고 있다. 경쟁력향상을 통해 불황을 극복하자는 결의는 경영혁신운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현대는 「생산성 10% 향상, 경비 10% 절감」을 목표로 하는 「플러스 10, 마이너스 10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아는 「매년 비용 30% 절감, 생산성 30% 향상을 통해 3년내 경상이익 3% 달성」을 목표로 내세운 「PI­333운동」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대우는 「NAC­Ⅱ 도전운동」(새로운 기업문화구축)을 전개하고 있다. 아시아는 올 코트 프레싱의 약자인 「ACP작전」을 통해 「아웃풋 극대화, 인풋 최소화」를 추진하기 위한 「더블 & 하프작전」에 나섰다. 「모두 나서서 생산성·품질은 2배, 경비는 절반으로 줄이자」는 운동이다. 삼성은 기본지키기를 통해 거품을 제거하고 그룹에서 추진중인 경비절감과 생산성향상에 앞서나가기로 했다. 『불황은 자동차산업에 더없는 위기다. 그렇지만 넘을 수 없는 위기는 아니다. 우리만 어려운게 아니라 모두 힘들어 한다. 이럴때 뛰면 보다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불황의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21세기가 결정된다.』 최근 자동차업체 최고경영자들은 이런 말을 하며 생산, 판매, 연구, 해외현장을 누비고 있다.<박원배>

관련기사



박원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