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악재에 내년경영 '몸사리기'
고유가·금융구조조정등 불안요인 촉각
중장기적인 경제성장 기조가 크게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의 투자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하지만 현재 기업의 투자심리는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을 제외하곤 투자에 몸을 사리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키는 어렵다는게 지배적 견해다.
서울경제가 대그룹 계열 30개 주요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의 내용은 경제여건에 대한 불안심리 확산 투자심리 위축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가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에 비례해 기업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현재의 취약한 경제 및 금융시스템하에서는 유동성을 제대로 확보치 않으면 생존을 기약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더욱이 유가급등을 비롯한 대외 경제여건도 단시일내에 호전되기는 어려워 기업들은 보수적인 경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따라 정부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도 차갑기만 하다.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불안감 중 상당 부분은 정부정책의 일관성부족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내년 경제여건 악화 우려=기업들은 내년이후 국내 경제를 어둡게 보고 있다.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23%에 불과했다.
반면 「올해와 비슷할 것(33%)」 「더 어려워질 것(40%)」이라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올 하반기들어 나타난 경제여건 악화 현상이 내년에도 이어지거나 더 심화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업들은 과연 정부 의지대로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될 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고유가 등 외부요인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으로 지적됐다. 더욱이 기업들은 권력누수 및 정치공방이 되풀이되면서 경제안정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투자심리 급랭=경제불안에 대한 우려도 기업들이 투자도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불과 18%의 기업들만이 투자를 늘릴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두자릿수 이상의 투자확대를 계획중인 기업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90년대 후반들어 기업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전자업체들중에서도 LG전자만이 투자를 20%가량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올해와 비슷한 6조원내외의 투자를 계획중이며, 현대전자는 감가상각비 수준에서 투자를 억제할 방침이다.
반면 응답업체 중 48%는 내년 투자규모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할 방침이다. 또한 나머지 34%는 투자규모를 축소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대부분 자동차·철강·석유화학업체들로 설비투자를 최대한 억제할 방침이다. 석유화학업체인 B사 관계자는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는 최대한 억제한다는 게 기본방침』이라며 『설비투자는 기존설비의 효율개선이나 노후시설에 대한 개·보수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업들의 설비투자 위축을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은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지적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금융구조조정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대대적인 투자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정부 못 믿겠다 = 기업들은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능력 및 대북정책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묻는 질문에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그저 그렇다(48%)」, 「대체로 잘못하고 있다(39%)」, 「매우 잘못하고 있다(3%)」등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정부가 현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는데다 금융시장의 단기동향이나 거시지표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75%의 업체들이 「집권 후반기인 현 정부에서 레임 덕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응답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또 정부의 현 대북정책에 대해 절반이 넘는 57%가 「경제 구조조정 등이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대북사업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경제회복을 위해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정책의 우선 순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한편 국가의 역량을 경제문제에 집중시켜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위기는 없을 듯=최근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으나 기업들은 대부분 외환 및 경제위기가 재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사대상업체 가운데 70%가 「제2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응답한 데 반해 30%만이 위기재발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 97년 당시와 비교해 외환보유액 등 여러가지 거시경제 및 금융지표면에서 확연히 다르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기업들도 수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석훈 기자
한운식 기자
입력시간 2000/10/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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