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이것이 대못 규제] <3> 40년 묵은 주택법

주택보급률 100% 넘은 게 언젠데 … 아직도 무주택자 우선 타령

대형단지 공급 위주 법령 다품종 소량체제로 고쳐 다양한 수요 끌어들여야

정부 주도 공급제도 탓에 지역 주택수급 뒤죽박죽 지자체·민간권한 확대를


"요즘 세상에 한 채에 10억원이 넘는 집을 사려고 주택 청약통장에 매달 꼬박꼬박 돈을 넣는 사람들이 어딨습니까. 적재적소에 수요자들이 원하는 집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낡아빠진 청약제도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고급 빌라와 한옥을 개발해 판매하는 한 부동산 디벨로퍼 회사 최고경영자(CEO)의 하소연이다. 20가구 이상의 주택을 지어 공급할 경우 반드시 청약자 모집을 해야 하는 '주택법' 규제 때문에 수요자가 원하는 디자인과 가격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이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억지로 필지를 나눠 19채씩 주택을 공급하는가 하면 일부 업체들은 아예 청약통장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순위 내 청약에서는 홍보조차 하지 않는 이른바 깜깜이 분양에 나서기도 한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폐지, 취득세 영구 인하 등 정부의 4·1, 8·28대책 관련 법안들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부동산 거래 활성화의 발목을 잡았던 굵직한 대못들은 대부분 뽑혔다. 참여정부 당시 도입한 각종 규제 중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분양가상한제' 정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리 부동산 관련 법 체계에는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크고 작은 규제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택법만 해도 지난 40년간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돕는 데 큰 몫을 해왔지만 이제는 다양한 주택공급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주택의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의 주택제도는 양적공급 확대와 투기수요 억제 등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수요 반영하는 공급 시스템 갖춰야=1~2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다 주택 보급률도 높아진 만큼 이제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공급을 위한 법령을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위한 법령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산층 이상 주택수요자들의 관심이 과거에는 아파트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 도심 한옥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는 만큼 이를 반영한 판매 및 유통방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도시의 경우 주택 보급률이 이미 110%를 넘어선 곳이 상당수"이라며 "이렇다 보니 신규 주택에 대한 수요는 무주택자보다 오히려 교체 수요자가 많지만 공급제도는 여전히 무주택자를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해 4·1부동산대책의 후속조치로 전용 85㎡ 이상 중대형 주택 청약가점제를 폐지하고 유주택자에게도 청약 1순위 자격을 부여한 것만으로는 추가 수요를 견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청약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무주택자·서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주택에 대해서는 기존 청약제도를 유지하더라도 민간 주택에 대해서는 수요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해 다양한 주택 수요자들을 시장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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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민간에 보다 많은 권한 넘겨야=전문가들은 주택공급 시스템을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것 못지않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주택법은 저소득 및 노년층의 주거 문제와 국가 전반의 주거복지, 주택의 성능향상 등에 초점을 맞춰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부는 과도한 시장 개입보다는 주거복지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주택공급 시스템은 중앙정부에서 정한 주택공급 물량을 지역에 할당하는 하향식(Top-down) 구조에 머물고 있다. 주택시장이 점차 세분화되고 있음에도 공급제도는 전국적으로 획일화돼 있어 지역 실정에 맞는 주택수급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주택공급제도는 상당 부분 일선 지자체에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천편일률적인 법 규정을 적용하기보다는 각 지역의 시장 특성에 맞는 맞춤형 공급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제는 주택정책이 공급 및 건설정책의 수준을 넘어 주거복지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지역 실정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가 임대주택의 공급이나 입주자 선정 등에 있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정 문제 등으로 주택·부동산 부문에서 공공 부문의 역할 확대에 한계가 있는 만큼 임대주택 공급, 택지개발 등에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A건설 관계자는 "그동안 민간 부문이 사실상 주택공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해왔음에도 건전한 시장 참여자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규제의 대상으로만 인식돼왔다"며 "시장 여건이 변화한 만큼 민간에 좀 더 많은 자율성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 틀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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