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명태 협상' 외교력 부재 드러냈다

河농식품부 차관, 러시아측 회담 파트너도 못만난채 '빈손' 귀국<br>"현지사정 파악도 없이 덤벼든 결과" 비판


하영제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은 지난달 30일 한ㆍ러 수산 최고위급 회담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다. 지난해 9월 이명박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수역의 명태 쿼터를 두 배로 늘리기로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데 대해 최종 결과물을 수확하기 위함이었다.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달 27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지난 6월2일 한ㆍ러 수산 최고위급 회담을 열어 명태 쿼터 증대와 불법조업방지 협정 체결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협상에 자신이 있었는지 협상결과를 예단해 쿼터 증대가 무산될 가능성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농식품부의 ‘소박한’ 바람은 며칠도 안 돼 완전히 틀어졌다. 이번 회담의 러시아 측 파트너는 총리실 소속의 안드레이 크라이니 수산청장. 우리 측은 장태평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있지만 상호 서열을 고려해 하 차관이 회담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이 농식품부와 외교통상부 등에 확인한 결과 러시아를 찾은 하 차관은 크라이니 청장과의 예정된 회담은커녕 만남조차 갖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크라이니 청장이 우리 측과 만나기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하 차관은 회담도 하지 못한 채 4일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중대한 국익이 걸린 외교협상을 놓고 공식 방문한 정부 대표가 러시아에서 사실상의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외교 관행에 비춰볼 때 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앞서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즉 하 차관이 러시아를 찾기 직전 모스크바에서 열린 양국 간 수산 고위급 회담이 불법조업방지협정 체결을 놓고 난항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박종국 농식품부 수산정책실장과 리소바니 러시아 수산청 부청장은 고위급회담에서 양국 간 불법조업방지협정 체결과 연계해 러시아 수역의 한국 명태 쿼터를 2만500톤에서 4만톤으로 두 배 늘리는 데 의견접근을 시도했으나 러 측이 불법조업방지협정을 올해부터 곧장 적용해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협상이 틀어지고 말았다. 국회 비준 등 국내 절차를 감안할 때 조기에 협정을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우리 측 입장을 러 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예정됐던 최고위급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러시아는 고위급 회담의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최고위급 간 만남 자체가 의미가 없다며 회담을 거부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지에서 러시아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해 최고위급 회담을 열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국가 간 최고위급 협상이 예정됐다 무산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방문국 고위인사를 아예 만나주지도 않은 것은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인 예의’에서 벗어난 것이며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교가에서는 러시아 측이 설령 나름대로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 측의 사정을 치밀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회담에 나선 우리 정부의 ‘한건주의식, 성과주의 외교’가 이번 부실 외교, 심하게 표현하면 ‘망신외교ㆍ굴욕외교’를 자초했다고 보고 있다. 명태 협상에 정통한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 명태 쿼터 증대를 대통령 정상외교 성과로 청와대가 적극 홍보하면서 농식품부가 러시아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지도 않고 덤비기식 협상에 나선 결과” 라며 “이번 협상은 분명한 실패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문제점에 대한 전반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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