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의 발등의 불은 ‘경제 살리기’일 것이다. 경제가 가라앉는다면 공약 실천도 힘들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부부채가 과다한 선진국들은 어쩔 수 없이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내는 이례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효과는 영 신통치 않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재정이 건전한 편이어서 재정정책을 동원할 여지는 있다. 아니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동원해야 한다. 첫째, 현재 우리 경제를 억누르는 경기침체의 원인은 수출수요 자체가 줄었다는 점에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크게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출수요만 있다면 지난 1997년말 외환위기 때처럼 우리의 노력으로 가격경쟁력을 높여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결국 내수를 부추겨 경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정책이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경기침체기 때 내수ㆍ경기진작 효과 커
둘째, 재정정책의 효과는 경기침체기에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용어로는 재정승수가 경기침체기에 더 크다. 그간의 경험칙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의 재정적자를 내면 성장율이 0.6%정도 상승(재정승수 0.6)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경기침체기 재정승수는 이보다 훨씬 크다. 지금처럼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유동성이 넘처나 통화금리정책의 효과가 없어진 선진국 경제상황에서는 재정승수가 1보다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 경제는 아직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국제금융시장 움직임 때문에 통화금융정책의 효력이 약화돼 재정정책에 보다 많은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셋째, 어차피 적자보전용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국채발행비용을 줄이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예산은 경기가 지난해 예산편성 시점에 예상했던 것보다 좋지 않을 것으로 보여 GDP 대비 1% 정도의 추가적자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지난해 세수는 당초 목표보다 3조원정도 밑돌았다. 더욱이 산업은행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계상한 산은 주식 매각대금 등 10조원의 세외수입도 현실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세수가 부족하면 지출이 줄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현 경제여건에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적자보전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적자재정의 효과도 줄어든다. 차라리 적자보전 방법을 미리 강구하는 것이 보다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유리하다.
적극적 재정운용은 불가피하게 재정적자를 유발한다. 그런데 재정의 경기대응과 재정건전성 확보는 서로 상충할 수밖에 없는 정책목표일까?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재정이 건전하다는 것은 매년 재정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재정적자를 늘려 경기가 좋아지면 적자는 그 때 메꾸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재정준칙 헌법 명시 독일도 적자 감수
그런데 이를 절묘하게 실천에 옮긴 국가가 있다. 독일은 2008년 GDP 대비 국가부채가 67%로 유럽연합(EU) 협약기준인 60%를 초과하자 2009년 아예 불가피한 사유로 재정적자가 발생할 경우 이를 어떻게 줄여나가는지 까지를 명시한 재정준칙을 헌법에 반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재정적자로 인해 독일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지난해말 83%까지 상승했지만 그렇다고 현재 최상급 등위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의 신용등급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우리의 재정정책이 배워야 할 교훈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