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버냉키 지명자의 향후 행보

2년 전 뉴욕에서 열린 경제학자 회의에서 벤 버냉키 차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지명자를 처음 만났다. 버냉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인 통화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당시 정확한 발표 내용은 잊었지만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눈 기억이 난다. 이후 다양한 경제학자 회의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버냉키는 20년간 프린스턴대 교수로 있으면서 ‘경제학 원론’을 공동 집필했다. 대학 새내기들에게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경제를 간단하고 쉬운 용어로 표현하는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를 FRB 이사로 임명했다. 버냉키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등 중요한 경제적 이슈에 대한 토론을 이끌며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일년에 몇 차례씩 다른 은행가들과 함께 FRB를 방문해 앨런 그린스펀 의장, 버냉키, 그 외 다른 임원들과 다양한 경제 이슈들에 대한 토론을 나눈 적이 있다. 2002년 디플레이션이 뜨거운 이슈로 부각했을 때 버냉키는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또 풍부한 지식과 표현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버냉키는 당분간 미국과 전세계 금융시장으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받았던 전설적인 인물 그린스펀 의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버냉키는 지명 당시 그린스펀 의장의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버냉키와 그린스펀은 통화정책 운용의 내용과 스타일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그린스펀은 말을 할 때 모호하고 어려운 단어나 문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96년 12월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을 때 그린스펀은 “시장이 비이성적 풍요(irrational exuberance)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버냉키라면 그 때 “주식시장이 고평가됐다”고 말했을 것이다. 비록 FRB 의장으로서 보다 신중해질 필요는 있겠지만 버냉키의 말은 매우 분명하고 직접적이며 간단하다. 버냉키는 또한 통화정책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의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과거 FRB는 지금보다 경제나 통화정책에 대한 관점을 시장에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버냉키는 FRB의 정보 공개 측면에서 한 발 더 나갈 것으로 보인다. 언어구사방법 외에 금리결정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버냉키는 일정 공식에 근거한 인플레이션 목표제의 강력한 옹호자다. 가령 인플레이션 허용 범위가 2~4%라면 버냉키는 중간 정도에서 ‘최적의 장기물가상승률(Optimal Long-Run Inflation RateㆍOLRIR)’을 토의할 것이다. 버냉키가 OLRIR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밝힌 적은 없지만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이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최소한의 허용 범위에 관해 말한 적은 없지만 한 보고서에서 2% 정도를 제안한 적은 있다. 만약 실제 물가상승률이 목표 상한선인 4%를 넘어설 경우 FRB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이다. 또 실제 물가상승률이 하한선인 2% 밑으로 떨어지면 금리인하가 필요하다. 통화정책이 자동적으로 조정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통화정책을 이해하기가 매우 쉽고 간단하다. 또 금융시장에서도 금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버냉키의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린스펀 후임자 중 한명으로 거론됐던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물가상승률이 높고 중앙은행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만 잠재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두가지 기준 모두 현재의 미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버냉키도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당장 실행에 옮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버냉키가 FRB 안팎에서 신뢰감과 영향력을 구축할 때까지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단 한 표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에 상관 없이 향후 미국 금리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예견된 미래에 FRB는 금리인상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가는 상승 추세에 있다. 이는 대부분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 때문이며 핵심물가 또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밖에 또 다른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한 세기 동안 가장 강력한 주식ㆍ채권시장 호황을 이끌었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그 과정에서 거품이 생겼고 거품이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우려하고 있다. 부동산시장도 두드러진 걱정거리다. 주택시장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커서 주택시장의 급속한 후퇴는 세계 경제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 만일 거품이 터질 경우 버냉키는 이에 뒤따르는 문제들도 해결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버냉키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존경받았던 그린스펀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분간 그 누구도 그린스펀의 빈 자리를 채울 수는 없다. FRB 의장은 전통적으로 경제학자의 자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린스펀은 그 자리를 경제학자에 정치가와 외교관이 결합된 자리로 바꿔 놓았다. 전설적인 그린스펀의 그늘 아래서는 버냉키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당분간 빛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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