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이 또 한번의 힘겨운 싸움에 직면했다. '재정절벽(fiscal cliff)'이라는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서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이끄는 의회(하원)와 담판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6일 펼쳐진 오바마 대 롬니의 대결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국제 사회와 시장은 이제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의 명운이 달린 오바마 대 베이너의 대결 구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다급해진 오바마, 쉴 틈도 없이 해법 모색=그동안 대선에 온 힘을 쏟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과 동시에 미국의 최대 당면 과제인 재정절벽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가 올해 말까지 재정절벽을 피하기 위한 2013년도 예산안에 타협하지 못하면 당장 내년 1월부터 총 7,000억달러 규모에 육박하는 재정지출 자동 삭감과 증세 조치가 가동돼 미국 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6일 치러진 총선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의석을 유지함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정적' 베이너 하원의장과 더는 미룰 수 없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이날 밤 늦게 베이너 의장과 헤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의회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파싸움을 지양하고 재정절벽을 피하기 위해 공화ㆍ민주당이 협조할 것을 당부했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다음달 중순 현 의회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공화당과의 협상을 서둘러 타협을 도출하겠다는 방침이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추진하려는 부유층에 대한 증세 방안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올해 말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베이너 의장과 피 말리는 '밀고 당기기'를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너 의장은 7일 발표한 성명에서 재정절벽을 피하기 위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증세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성큼 다가온 재정절벽에 시장 우려 증폭=미 대선이라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던 시장도 눈앞의 위기로 성큼 다가온 재정절벽 우려에 본격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7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폭락한 가운데 미국 재정절벽이 현실화할 경우 세계 경제가 직면할 혼란에 대한 우려 속에 글로벌 자금은 이날 안전자산으로 몰려갔다. 특히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미국이 재정절벽을 피하고 부채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내년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데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위원장도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달까지 의회와 타협점을 찾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장을 우려를 부추겼다.
이처럼 재정절벽 우려가 커지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0.11%포인트 하락한 1.63%로 하락했으며(국채가격 상승), 독일의 2년물 국채 금리는 7월 기록한 최저점에 근접한 -0.06%까지 떨어졌다. 세계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는 장중 80.92를 기록해 9월7일 이래 최고점에 달했다.
◇'대타협'이냐 '임시봉합'이냐=재정절벽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미국이 국제적 신뢰를 잃는 최악의 사태를 피해야 한다는 데는 공화ㆍ민주 양당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양당이 올해 내 팽팽하게 맞서는 의견을 조율해 대타협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고려하면 미 의회에 남은 시간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그레그 앤더스 씨티그룹 통화전략 북미 대표는 "12월31일까지 의회와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시장에서는 양당이 어떻게든 막판 타협점을 찾아 재정절벽이라는 최악의 상황만 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타협을 이루거나 감세와 재정지출 삭감을 둘러싼 절충안을 찾지 못한다면 최소한 감세시한을 6개월가량 연장해 시간을 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WSJ는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가 어떻게든 벼랑 끝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만 타협은 마지막 순간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