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강만수 회장에 대한 소고

우리 경제에 많은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족적을 남겼지만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만큼 부침이 심한 사람도 드물다. 환란의 주범이라는 낙인에 절치부심한지 10여년. MB정권 탄생 공신이라는 화려한 웃옷을 걸치고 경제 사령탑에 올랐지만 고환율 정책으로 또 한번 쓰디쓴 질타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그가 지금 세 번째 도전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와의 통합을 통해 '메가뱅크(기자 생각에는 메가뱅크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를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은 그의 힘은 실로 무섭다. 시장은 이제 금융정책의 사령탑이라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말 대신 그를 쫓는다. 김 위원장이 17일 밤 "(산은 내정설을 보고)난감하고 어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매맞는 심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의 발언은 금세 묻혔다. "강력한 후보들이 존재한다. 산은은 후보 중 하나일 뿐"이라는 말도 아무런 힘을 얻지 못했다. 대신 다음날 조간은 강 회장 인터뷰를 큼지막하게 실었다. 두 사람이 교감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상황만 놓고 본다면 '김 위원장의 굴욕'이라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가뜩이나 론스타 문제로 체면을 구기지 않았던가. 물론 금융 산업의 판이 흔들리는데 김 위원장 권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정작 문제는 강 회장의 처신이 자칫 금융산업의 명운을 좌우할 큰 판을 처음부터 깨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현직 한 후배 관료는 "강 회장이 너무 빨리 나선다. 후배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했다. 판을 만들기도 전에 위세 높은 그가 흔들고 다니니 다른 참여자들은 얼씬 하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심지어 현 정권에 힘 깨나 있다는 이팔성 우리지주회장조차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고 있으니…. 그렇다고 후배들이 대통령 측근이자 대선배인 그를 향해 직언을 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말 판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곤란하다. 산은 인수 자체가 우습지만 그렇다고 희망 자체를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개 참여자가 처음부터 독주하는 것은 금융산업 전체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 판이 다 만들어질 즈음 나서도 늦지 않다. 이러다가 강 회장의 위세에 눌린 다른 참여자들이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 또 다시 판이 깨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우리금융지주는 어느 곳보다 환란의 상흔이 깊게 배어 있는 곳이다. 환란에 책임 있는 관료가 자신의 잘못된 정책으로 상처 입은 금융회사 정상화에 판을 깬다면 다시 한번 죄를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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