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재계의 "규제완화" 요구 전면거부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업무보고에 앞서 이례적으로 “출자총액제도와 관련한 몇 가지 오해에 대한 설명”이란 자료를 내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가 전날 출자총액제한제 때문에 수조원 규모의 투자를 못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정면 반박문을 내놓은 셈이다. 출자총액제한제의 이름을 ‘타회사주식보유한도제’로 바꾸기도 했다. 우회적으로나마 구조본을 “정경유착의 본산”으로 규정짓고 이를 해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성장론’에 가려 수세적 입장에 처해왔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고 일견에서는 재계와의 마지막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타깃은 삼성그룹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공정위로서는 다음달 3일 당 정협의를 앞두고 업무보고의 형식을 통해 시장개혁의 명분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재벌 심장부에 대한 정면공격= 공정위의 업무보고에는 구조본의 실체(기능ㆍ활동ㆍ경비 내역)를 결합재무 제표상의 주석사항에 기재하겠다는 내용까지 담겼다. 이동규 독점국장은 “금감원과 회계연구원 등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강철규 위원장은 “그래도 투명하게 되지 않으면 구조본이 법적 기구는 아 니지만 공정거래법에서 구조본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 없는지 검토하겠 다”며 “상위 5개 그룹 정도의 구조본이 문제지만 (이하 그룹에도) 실질적으로 구조본 역할을 하고 있는 기구가 있으면 (공개대상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정책의 관심이 삼성ㆍLGㆍ현대자동차를 비롯한 5대 그룹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불 수 있다. ◇"정치적으로 접근 말라" 포문= 강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 자리에서 출자총액규제와 관련된 부분에서 강한어조로 재계를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출자총액규제 때문에 투자가 저해 된 사례를 신고하면 성실하게 검토하겠다고 전경련에 얘기했으나 신고나 협의하기보다는 언론이나 정치적 발언을 통해 이 제도를 ‘투자저해 주범’이라고 발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산업자원부와 재계가 모여 ‘대형 투자프로젝트를 출자총액규제의 예외로 하도록 한다’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공정위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제도의 주무부처도 아닌 곳에서 제기되는 무분별한 출자총액규제 완화론에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출자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는 재계의 논리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했다. “어떤 기업이 2조원 규모의 기업 매각건에 입찰하지 못한 것을 사례로 제시했는데 이는 지분이동이지 신규투자가 아니며 그런 것을 투자라고 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당정협의 결과가 관건= 재벌계 금융사에 대한 지분 의결권을 현행 30%에서 점진적으로 축소하겠다 는 내용이 논란거리다. 강 위원장은 “금융사가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는것 자체가 이해상충 문제가 있어 선진국에서는 금지됐지만 우리는 관행적으로 인정돼왔던 것”이라며 “개인적 생각은 단계적으로 축소해 결국 ‘제로(0)’로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사를 통한 재벌들의 ‘출자 놀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공정위는 아울러 계좌추적권 3년 연장 등 기업경영활동에 ‘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내용들을 대거 정책추진 사항에 넣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의지가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공정위는 이미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확정시기를 오는 5월3일 당정협의 이후로 미뤘다. 재계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는 여당 입장에서는 공정위의 입장을 100% 수용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재계에도 뭔가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분배론이 일고 있는 것도 여당으로서는 부담이다. 출자총액제한제와 관련해서는 재경부 등과의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계좌추적권도 공정위가 여야를 무난 하게 설득할 수 있을지 낙관하기 힘들다. 개혁의 칼날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일주일 가량 남은 당정협의까지가 최대고비가 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의(義)로운 싸움’임을 강조하지만 당분간 ‘외로운 싸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저작권자ⓒ 한국i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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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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