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기업가정신 되살리자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조석래 회장을 비롯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이 진객을 영접하기 위해 도열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맞이하는 노(老) 회장들의 환한 미소 위로 2006년 8월 ‘뉴딜’을 한다며 전경련을 찾았던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꼿꼿이 몸을 세운 채 투쟁선언하듯 “투자를 촉구하러 왔다”며 비장하게 운을 떼던 김 의장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전경련 회장단은 시큰둥했다. “출자총액제한제가 전면 폐지될 경우” 라는 단서 조항을 붙여 “앞으로 2년 내에 14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하겠다”고만 답했을 뿐이다. 4대그룹 회장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일부 중견기업 회장들만 김 의장 연설을 묵묵히 들었다. ‘정치쇼’에 부화뇌동하지 않을 만큼 기업인들은 노회했다. 회동이 끝나자마자 청와대는 김 의장에게 “뉴딜정책은 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며 바로 제동을 걸었다. 17개월 뒤 이 당선인을 맞는 재계의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이건희ㆍ정몽구ㆍ구본무ㆍ최태원 회장 등 4대 그룹 회장들이 모두 달려 나왔다. “투자 확대” “공격경영”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단지 최고 권력자에 대한 인사치레였을까. 그보다는 ‘이 당선인의 친기업 정책을 믿어보겠다’는 신뢰와 ‘이제는 달라지겠구나’하는 희망의 눈빛이 강하게 느껴졌다. 무자년 새해를 맞아 대기업들이 ‘물만난 고기’마냥 줄지어 투자를 외치고 있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해보다 1.5배 넘는 1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SK그룹은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10% 늘린다고 했다가 다시 15%로 상향 조정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보다 투자규모를 두 배로 증액하고 채용도 30%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바야흐로 신명나는 ‘기업의 봄’이 활짝 열리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국내 모 경제연구소의 기업전략 전문가는 “규제만 푼다고 투자가 늘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뭔가 미덥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투자가 위축된 것은 규제 탓도 있지만 대기업들의 ‘돌다리도 두드려보자’는 보수적인 경영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신규 투자는 리스크를 동반한다. 그런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동물적 감각으로 밀어부칠 수 있는 원동력이 불굴의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다. 이명박 정부는 분명 멍석을 깔아줄 것이다. 재계의 투자 발표가 새 정부 출범에 장단이나 맞춰주는 ‘구두선’으로 흐지부지되지 않으려면 재계는 그동안 가슴 속에 간직해왔던 ‘기업가 정신’을 꺼내 전신을 무장해야 한다.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도전정신과 과감한 추진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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