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하영제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민관합동 국제곡물회사 설립… 식량무기화 시대 대비할 것"



日, 우리보다 수입 2배 많지만
70%를 자체 시스템으로 조달 내주 美현지법인 현판식 갖고
콩·옥수수등 10만톤 시범수입
내년부턴 브라질 등으로 확대 국가별 전문적 컨소시엄 구성
우크라이나·연해주도 진출할것
"우리보다 수입량이 두 배나 많은 일본은 수입 농산물의 70%를 자체 시스템으로 조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대비가 안 돼 있습니다. 다음주에 국제곡물회사가 설립되면 올해 콩 5만톤, 옥수수 5만톤을 시범적으로 들여올 계획입니다." 지난 1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집무실에서 만난 하영제(사진) 농수산물유통공사(aT) 사장의 목소리에는 강한 자신감이 실렸다. 하 사장이 그렇게 강조하던 식량무기화 시대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가 다음주 사실상 시작되기 때문이다. aT는 오는 25일 삼성물산ㆍSTXㆍ한진 등 민간기업 3사와 민관합동 국제곡물회사 설립을 위한 최종 협약식을 갖고 28일 전세계 곡물거래의 핵심인 시카고 인근에 위치한 현지법인에서 현판식을 열 계획이다. 하 사장은 "유통 인프라가 우수하고 통상 투명성이 높은 곡물 중심시장인 미국에 최우선적으로 진출하고 내년부터는 곡물사업 선점효과를 노릴 수 있는 브라질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aT는 앞으로 우크라이나ㆍ연해주 등에도 전문화된 국가별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략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2008년 에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중국에서 콩을 수입하겠다고 계약을 맺었다가 바로 중국이 취소해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앞으로는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입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하 사장은 국가 곡물조달 시스템은 우리나라 미래의 필요충분 조건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세계적인 기상이변과 주요 생산국의 식량안보 전략 등으로 국제곡물시장 수급 불균형이 확대되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 사장은 "필리핀도 농업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해 태국에서 쌀을 수입하고 있는데 2008년에는 원하는 물량의 65%밖에 사지 못했다"며 "러시아ㆍ우크라이나 등이 곡물 수출 금지 조치를 취했던 사례는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자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농사를 짓기 위한 토지와 물은 점차 줄고 있는데다 수입곡물의 60~70%를 소수 곡물 메이저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다. 하 사장은 "농업자원도 광물자원처럼 언젠가 고갈되는 희귀자원"이라며 "지금까지 자급률을 사용했는데 앞으로는 확보하는 개념인 '자주율'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현 27%인 곡물 자급률을 자주율 개념으로 47%까지 올리는 것이 국가 곡물조달시스템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국제곡물시장에 첫발을 내디디는 국제곡물회사의 자본금은 250만달러. 당초 정부가 40%, 민간이 각 15%씩 총 60%를 부담할 계획이었지만 CJ제일제당이 돌연 불참의사를 밝히면서 정부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하 사장은 "당초 20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기 때문에 4억원 정도를 더 충당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aT 비중은 55%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까지 투자예산은 2,986억원이 책정됐다. 국제곡물회사는 산지수집ㆍ보관ㆍ운송 등의 과정을 통해 해외에서 곡물 수입 및 국내에 파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주요 곡물 메이저와의 전략적 제휴도 병행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곡물유통 채널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하 사장은 "중간 도매상 격인 '산지엘리베이터'는 현지 직원들을 고용승계하는 조건으로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일부에서 수조원이 드는 무모한 사업을 벌인다고 반대하는데 임대와 지분참여 등의 방식을 적절히 사용할 것"이라며 "근본 목적은 곡물을 필요할 때 제 가격으로 들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길 등 기존 메이저 곡물회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메이저 업체들이 소개도 해주는 등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30년간의 준비를 통해 이미 곡물시장에서 독자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하 사장은 "일본은 우리보다 비상의식이 강해 비축개념을 앞서서 준비했다"면서 "흉년으로 농작물 생산이 전혀 안 되더라도 몇 년간 갖다 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봤다. 일본 대지진으로 대일 농식품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하 사장은 "지진발생 이후 초반에는 증가세가 주춤했지만 12일까지 5억4,000만달러 수출로 전년동기 대비 20.7% 증가하는 등 실적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수ㆍ라면ㆍ미역ㆍ인삼ㆍ소주 등은 높은 증가세를 보였으나 장미ㆍ국화ㆍ파프리카ㆍ전복ㆍ굴 등은 감소세를 보였다. 하 사장은 "일본 동북지역의 양식수산(어패류 등) 피해로 타국산 신선식품 및 즉석가공품의 수요증가가 예상된다"며 "오이ㆍ토마토ㆍ딸기 등 일부 품목도 수출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일본에서 방문한 관계자에게 즉석 가공식품 '육개장'을 줬더니 좋아하더라"면서 "한식을 더 전파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하 사장은 "소비위축과 함께 도로유실, 물류시설 파괴에 따른 운송의 어려움 등은 걱정거리"라고 지적했다. 실제 전력ㆍ휘발유 부족에 따른 현지 유통체계 문제로 파프리카ㆍ화훼 등의 수출주문이 줄어들었다. aT는 '대일본 수출점검 태스크포스(TF)를 구성,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농림수산식품 수출 다각화 방안과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시장 비중이 높은 김치ㆍ파프리카ㆍ화훼(장미)ㆍ막걸리 등을 중심으로 중국ㆍ동남아 등 신규시장을 개척해 시장다변화를 꾀할 방침이다. 글로벌 전략과 수출에 대해서도 하 사장은 자신감을 나타냈다. 지난해 농림수산식품 수출은 냉해ㆍ태풍 등 이상기온에 따른 생산감소 등에도 불구하고 59억달러로 전년(48억달러) 대비 22.3% 증가했다. 하 사장은 "목표 달성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고 운을 떼면서도 "30억달러에서 40억달러 돌파에 20년이 소요됐지만 최근의 수출성장세를 바탕으로 올해는 76억달러 수출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aT는 수출 인프라 강화를 위해 물류 및 마케팅, 시장ㆍ제품연구조사 등의 복합기능을 갖춘 '농식품 해외 수출전진기지'를 건립할 계획이다. 하 사장은 "중국 칭다오에 현지 법인설립 및 부지확보를 추진하고 있으며 연내 착공해 내년까지 완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러한 수출전진 기지를 중국ㆍ일본ㆍ미국 등 식품수입 규모가 증가 추세에 있는 주요 수출국가를 대상으로 2020년까지 10개소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농식품은 중국(스낵김 등 전략품목), 일본(식재료ㆍ파프리카), 싱가포르·홍콩(딸기), 말레이시아(단감), 대만(사과), 미국(배) 등 국가별로 대표 수출 품목이 자리잡는 분위기다. 하 사장은 "수출선도조직, 품목별 수출협의회를 활성화시켜 시장별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치고 선택과 집중에 의한 사업의 규모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국내 시장이 개방되는 것에 대한 우려에 관해서는 "쇠고기 시장을 개방했지만 미국ㆍ호주와의 경쟁에서 한우가 이겨낸 것을 보듯 우리 농수산물도 기회가 오는 것으로 본다"며 "농민들이 걱정을 많이 하지만 철저하게 대비책을 마련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날 것을 먹지 않는 중국인들이 회ㆍ전복ㆍ해삼 등 한국의 고급 수산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농식품은 안전성과 믿음이 들어가면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여지가 공산품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하 사장은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공포된 것에 대해 "농식품 유통 측면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사장은 "농민들은 풍년이어도 고민, 흉년이 되도 고민"이라며 "생산자 단체라는 특장점을 지니고 있는 농협은 가격이 폭락할 때 지지해주는 역할을, aT는 가격폭등으로 국내 상품이 동날 때 빨리 저렴하게 들여와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aT가 너무 시장에 개입하지 않도록 과거에 조직을 많이 줄였는데 지금은 상당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유통과 수출의 연계성 등을 감안할 때 너무 성급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관료출신… 치밀함이 강점, 식량안보 위해 '동분서주'
■하영제 사장은 취임 6개월. 하영제 농수산물유통공사(aT) 사장은 우리의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 방방곡곡을 쉴 새 없이 다녔다. 국내에서는 농정 현장을 다니며 화훼업체, 농식품 수출입 업체 등을 만나 애로사항을 듣고 국가곡물 조달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미국 미시시피 강변, 브라질 바이아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찾았다. 당장 다음주만 해도 무박 2일로 시카고를 방문해 국제곡물회사 법인 현판식에 참석하는 일정이 잡혀 있다. 하 사장은 "차관 시절에는 국가 전체 농정업무를 기획하는 역할이었다면 aT는 집행 성격이 크기 때문에 직접 보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며 "식량안보를 달성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하 사장은 정통관료 출신으로 치밀함이 강점으로 꼽힌다. 민선 3ㆍ4기 남해군수와 산림청장,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 등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정무적 판단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산림청장 시절에는 전체 국토의 64%를 차지하는 산림을 보물산으로 가꿔 국가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물산 프로젝트'를 실시하며 산림 분야 규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 생소한 산림 분야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동남아에서 남미까지 지구촌을 누비며 '산림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남해군수 시절에는 일부 반대를 떨치고 남해 스파&골프리조트를 비롯해 대단위 조선단지를 유치하는 등 자신의 판단에 대해 강한 집행력을 보였다. 하 사장에게 올해는 aT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원년이다. 현재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전체회의에 계류돼 있는 법이 통과되면 공사명이 '한국농수산식품공사'로 바뀌게 된다. 수출진흥ㆍ국제곡물회사 등 공사의 해외사업 비중이 커지고 있는 추세를 고려해 명칭에 '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식품산업 육성 정책사업 실행기관인 점을 반영해 '식품'도 포함했다. 하 사장은 "업무 내용에 식품이 들어가게 되므로 한식과 관련된 식자재 산업과 문화 수출로 우리 식품이 세계화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일조하겠다"며 "여야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조만간 공사명 변경 및 자본금 확대 등의 후속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약력 ▦경남 남해 ▦경남고ㆍ서울대 농업교육과 ▦행시 23회 ▦산림청 유통개발계장 ▦내무부 행정계장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담당관 ▦경남 진주시 부시장 ▦경남 거창군수 ▦남해군수 ▦산림청장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 ▦농수산물유통공사(aT) 사장
"농산물값 안정 위해 가격정보 공개 확대"
유통정보시스템 통해 매일 제공
조사대상더늘려 신뢰성 높일것
"자동차는 가격이 올라도 큰 논란이 되지 않지만 상추는 다릅니다. 그만큼 농수산물이 생활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죠." 하영제 농수산물유통공사(aT) 사장은 물가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고개를 내저었다. 판매를 하는 생산자도 제 값을 받아야 하고 소비자 또한 부담 없이 구입하게 되는 최적의 방안을 찾는 게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농수산물 물가가 지속적으로 급등하면서 aT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농수산물 물가안정을 위해 aT는 가격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있다. 유통정보시스템(KAMIS)을 통해 매일 도매가격 75품목 129품종, 소매가격 65품목 102품종에 대한 농수산물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난 3월부터는 언제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 사장은 "앞으로 조사 대상처를 확대해 가격정보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내부적으로는 유통정보 시스템 서버 교체를 통해 안정적인 정보제공 여건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표본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재래시장 위주로 가격정보 공개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농산물 가격은 심리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면서 "명절 전 농산물 수요급등 시기에 과거 추세치 및 유통실태 분석을 통한 성수품 구매적기 정보나 구매처별(재래시장·대형유통업체) 가격비교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가격인하 경쟁 동기 유발 등 자발적인 가격조정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농수산물의 안정적 유통이라는 본연의 업무보다 물가대응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하 사장은 "한시적인 차원이 아니라 시장 출하 및 매매에 관한 의사결정 지원,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으로 원활한 수급조절 유도 및 실효성 있는 가격안정대책 추진을 위한 정책자료 제공 등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겨울철 한파 등 이상기온과 구제역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농수산물 가격이 전년 동기보다 아직 높은 상황이다. 지난달 농수산물 71개 품목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4.9% 상승했다. 향후 물가전망에 대해 하 사장은 "기상여건에 따른 작황부진 및 재고량 감소 등에 의한 불안요인이 있지만 봄 채소류 등의 출하가 시작되는 4월부터 공급여건은 전반적으로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농업관측센터(KREI) 등 유관기관과의 유기적 협력체계를 구축ㆍ운영해 수급불안정에 대비한 수매ㆍ비축 및 적기 공급으로 가격급등 요인을 최소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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