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 3년 시한으로 시행한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가이드라인은 대기업 MRO 업체의 영업활동을 제한해 중소 MRO 업체를 키우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달 말까지 MRO 가이드라인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한 동반위는 최근 이를 상생협약으로 바꿔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상생협약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내용은 가이드라인과 같다. 결국 가이드라인을 연장하겠다는 얘긴데 지난 3년간 시행한 결과 아무 효과도 보지 못한 정책을 계속 끌고 가겠다는 발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이드라인이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판단은 이미 동반위가 스스로 작성한 'MRO 가이드라인 효과 및 실효성 분석' 보고서를 통해 내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이드라인 시행 이후 15개 중소 MRO 업체 중 11개 업체의 매출이 줄거나 거의 변동이 없었다. 중소 MRO 업체의 매출이 늘어나도록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제한했더니 대기업은 물론 중소 MRO 업체의 매출마저 같이 감소했으니 역효과만 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 MRO 플랫폼을 통해 물품을 공급하던 제조기업의 유통경로가 닫혔다는 점이다. 가이드라인이 대기업의 MRO 시장 진출을 제한하니 대기업의 매출이 감소하고 당연히 대기업 MRO 플랫폼에 물품을 공급하던 수많은 제조기업이 고객을 잃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가이드라인에 저촉되지 않는 대형 외국계 MRO 기업은 자기네 MRO 플랫폼에 올린 물품을 자국이나 값이 싼 중국 기업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앞으로 계속 시행되면 국내 MRO 시장이 외국계 기업의 차지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상생협약으로 전환하는 데 대해 대기업과 중소 MRO 업체 모두 반대하고 있다. 동반위는 실적 내기에 급급해 상생협약을 무리하게 추진하기에 앞서 현실부터 인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