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한국기원 주변에서 지내다 보니 어린 소년이던 프로기사들이 청년, 장년을 거쳐 이젠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아왔다. 프로기사는 눈만 뜨면 바둑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어서 세속의 찌든 때와 먼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프로기사들은 참 곱게 늙는다. 작고한 조남철9단이 우선 그러했다. 40대의 얼굴이나 70대의 얼굴이나 큰 변화가 없었다. 김인도 그러하고 하찬석도 그러하다. 노영하도 홍종현도 양상국도 서봉수도 그러하다. 30년전의 얼굴바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능욱도 몇해 전까지는 마찬가지였다. 미소년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해 사이에 서능욱의 얼굴이 크게 변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탈리아 마피아의 보스 같은 얼굴이 되었는데…. 유독 그가 이렇게 현저히 변한 이유는 그의 몸이 많이 불었기 때문이다. 서능! 다이어트 좀 해야 되겠어. 50세가 넘은 프로기사들은 호칭을 할 때 이름의 두 글자만 부르는 버릇이 있다. 서능욱은 서능, 백성호는 백성, 김수장은 그냥 김수로 부른다. 장수영은 장수, 김희중은 김희, 정수현은 그냥 정수로 부른다. 거기에는 연유가 있다. 관철동 시절. 칠판에 대국 스케줄이 빽빽하게 적혀 있는데 편의상 이름의 두 글자만 적곤 했었다. 서예가이며 칠판글씨에도 독보적 솜씨를 보였던 안영이씨가 주로 그 기록을 담당했었다. 잡지 권말에 실리던 전적표 역시 두 글자로만 기록되었다. 그러다보니 두글자 호칭이 입에 붙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필자는 서능욱을 만나면 그냥 서능으로 부른다. 서능, 다이어트 좀 해야 되겠어. 상변에서 흑의 팻감이 무수히 나왔다. 게다가 상변의 백돌들은 여전히 숨이 붙어 있다. 결국 흑은 49와 51을 연타하는 것으로 기나긴 패싸움을 끝냈다. 흑49로 참고도의 흑1에 잇고 버티는 최후의 버팀수가 있을 것 같지만 백4의 팻감이 있어서 패는 어차피 흑이 진다. "백이 도처에서 이득을 봤는데 아직도 승패불명이네. 끝내기까지 해봐야 알겠어."(서능욱) "흑이 포석에서 성공한 바둑이었어요."(윤현석) "끝내기는 아무래도 강동윤이 더 세다고 봐야겠지?"(서능욱) "그렇지도 않아요. 이세돌의 끝내기도 아주 섬세합니다."(윤현석) 여전히 승부의 저울추는 유동적이다. (39,45…38의 위. 42,4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