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집 팔고 보험 깨는 서민경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서민경제가 악화되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불황의 여파는 특히 서민주택의 경매 건수가 급증하고 보험 해약률이 크게 늘어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뭄이 들면 개울물부터 마르듯 불황의 그늘이 서민층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서민주택 경매 물건 수는 올들어 전년 동기에 비해 배 이상 증가했다. 전국의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은 지난해 상반기 월평균 3,394건에서 올 4월까지 월평균 7,664건으로 급증했다. 물론 2001년 이후 과잉 공급된 미분양 주택이 경매에 나온 경우도 있으나 주택담보대출의 축소로 금리 부담이 늘어난 실수요자들이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집을 내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집이 팔려도 대출금을 갚고 나면 한푼도 남지않는 ‘깡통 주택’도 나타났다. ‘빨간 딱지’로 불리는 압류물건도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이후 지난해에 처음으로 100만건을 넘어섰다. 빚을 견디지 못하는 서민층이 많아지다 보니 손해를 보면서 보험을 깨는 생계형 해약도 당연히 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11개월 동안 생명보험의 효력상실과 해약은 모두 819만건으로 이 또한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한해 사이에 100만건 이상이나 해약건수가 늘었다. 이처럼 서민층의 삶 자체에 어둠이 짙게 드리우고 있는데도 정부의 시각은 아직도 우리 경제의 침체국면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성장이냐 개혁이냐의 우선순위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다르게 마련이다. 정부 내에 통일된 경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대응 역시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혼란이 정리되지 않으면 경제를 회생시킬 기회도 놓칠 우려가 높다. 마침 재정경제부가 “경제 성장 없이는 분배 개선도 어렵다”는 내용의 홍보책자를 내놓았다고 한다. 경제성장으로 고용을 창출해 국민소득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소득분배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외환위기 이후에 나타난 소득불평등 정도, 즉 지니계수의 추이로 증명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를 통한 내수기반 확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개혁은 튼튼하고 폭 넓은 중산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론이다. 정부는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벼랑에 몰리는 서민층이 늘어날수록 개혁도 더욱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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