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바이오 산업등 황금알 사업 급부상주력사업 발굴·선정 경쟁력 강화가 살길
"주력사업 혹은 현재 수익이 나는 사업이라고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미래가 있어야 한다."
올해 나타난 대기업들의 두드러진 투자패턴이다.
미국 등 세계경기 침체와 이라크전 발발 가능성 등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정작 투자할 만한 사업이 없다는 게 기업들의 고민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달 21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앞날을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고 토로했다. 마땅한 승부수가 없다는 암시와 다를 바 없다.
기업들은 투자를 통해 수익을 확보해야만, 계속적인 유기체(Going Concern)로서 생명을 유지한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와 마찬가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업들의 승부 사업은 우리나라 산업 발전과 대체로 일치한다.
60년대는 섬유산업이 기업들의 최대 승부처가 됐다. 삼성, SK, 효성, 코오롱 등 수많은 기업들이 이 분야에 진출했으며 섬유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알짜배기 산업으로서 초기 자본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
70년대는 중화학 투자의 시기였다. 현대를 필두로 SK, 금호, 한화, 삼성, LG 등이 중공업, 조선, 기계, 플랜트, 화학, 정유, 철강 등의 산업에 진출했다. 정부는 유공, 포철 등의 공기업에 대한 투자에 직접 나서 대규모 자본 투하에 따른 민간의 투자여력을 보충해 줬으며, 나중에는 아예 이들 공기업들을 민간에 불하해 주면서까지 기업활동을 뒷받침했다.
80년대는 혼미의 시기였다. 정치적인 불안에 따라 정부의 산업정책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기업 역시 미래에 대한 방향 감각을 상실해 승부처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남미식의 산업붕괴가 예견되기도 했다. 다행히 반도체, 자동차 등에 투자가 꾸준히 이뤄져 90년대이후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효자 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90년대는 고기술ㆍ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전환을 요구받은 시기였다. 단순 생산기술과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대량 생산기술로는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으며 중국, 동남아 국가들의 눈부신 추격으로 뒤로 물러서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기였다.
하지만 첨단기술산업으로의 전환은 실패했고 결국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급기야 IMF 외환위기를 불러 왔다.
IMF 이후 5년간은 세계시장에서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은 시기였다. 차세대 승부사업을 끊임없이 확보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앞서 행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자각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유동성 확보에 매달려 막대한 수익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올해가 기업들로서는 10년후 차세대 주력 산업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바이오산업과 나노기술, 멀티미디어 기술, 2차전지를 이용한 미래형 자동차산업 등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차세대 내구소비재가 확실시되는 가정용 로봇 역시 유망 투자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위기의식에서 알 수 있듯, 우리 기업들이 아직 확실한 승부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기업의 운명은 앞으로 수년간 어떤 분야를 승부처로 해 시장을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