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3년 정도는 그냥 지켜봐줘야 하지 않겠나.”
4일 재정경제부 기자실을 찾은 이강원 한국투자공사(KIC) 신임사장의 간곡한 부탁이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설립과정을 지켜봐온 입장에서는 정말 지지하고 싶은 말이다. 그러나 운용수익률이 ‘존재의 이유’가 되다 보니 닥쳐올 난관들이 눈앞에 선하다.
당장 출범 후부터 KIC 행동 하나하나에 독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게 불 보듯 뻔하다. 법령에 따라 정부 간섭을 받지 않는 별도기관으로 설립됐다 해도 이를 순진하게 믿는 이들은 없다. 인사나 조직운용 과정에서 조금의 ‘흠’만 보여도 “재경부가 시켰느냐”는 책망이 쏟아지지 않을까.
또 내년 하반기 국정감사 시즌이면 의원님들의 열화 같은 성원으로 고스란히 수익률을 공개해야 한다. 단 0.1%포인트라도 한국은행보다 수익률이 낮다면 “그냥 한은에 맡기지 뭣하러 만들었소”라는 가시 돋친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오죽하면 신임사장이 첫 인터뷰에서 “KIC의 가치는 베스트보다는 라이트(right)”라고 강조하고 있을까 싶다.
이처럼 암울한 전망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문제는 이 모두가 KIC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이왕 맞부딪쳐야 할 난관, 아예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돈을 조금이라도 굴려본 사람들은 초보 투자가가 당장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짧은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경험치’를 쌓았느냐 하는 점이다. 때론 밑천을 잃더라도 그 경험을 헛되이 하지 않는 사람을 키우다 보면 돈은 언젠가는 벌게 된다.
정부가 KIC 설립 목표로 내세웠던 자산운용시장 활성화도 따지고 보면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정말 장기적인 국면에서 외환 문제와 KIC를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면 당장의 ‘수익’보다는 ‘사람’을 강조하는 게 필요하다.
외환딜러나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은 KIC의 성공 여부에 대해 “몇년 후 ‘KIC 출신=자산운용의 엘리트’라는 공식이 성립되면 KIC는 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방증하듯 싱가포르투자청(GIC)은 향후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제임스 올펜슨 등의 인재를 투자자문으로 두기도 했다. KIC가 장기적인 안목을 요구한다면 그 목표 역시 국제금융시장의 ‘사냥꾼’을 키우는 요람이 적절하다. 물론 약간의 ‘수업료’가 들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을 키워놓아야 “외환운용을 맡기고 싶어도 국내에는 사람이 없다”라는 푸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