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엔화 환율이 달러당 100엔까지 주저앉을 수 있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일본 중앙은행이 시중에 10조엔을 추가로 풀어 공격적인 '물가 띄우기'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이번 유동성 공급정책이 엔화값을 얼마나 끌어내릴 수 있을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로 제조업에 잇달아 타격을 입은 일본으로서는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해야 할 처지다.
글로벌 외환시장 트레이더들은 일단 '팔자'모드로 돌아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를 발표한 14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은 달러당 78.47엔에 마감해 전일 종가(77.57엔)보다 0.90엔 상승(엔화가치 하락)했다. 이는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치다. 15일에는 반발매수세가 유입됐지만 0.04엔 내리는 데 그쳐 78.43엔으로 마감했다.
일본 대형은행의 한 딜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 매수신호만 내던 런던 딜러들이 마침내 엔화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정말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엔화는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스위스프랑화와 더불어 대표적 안전통화로 분류돼 인기를 끌어왔다.
엔화 약세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올해 엔화값이 달러당 85~100엔 선까지 내려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일본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농수산물 제외)를 전년 대비 1% 올리겠다고 공언한 점이 긍정적인 요인이다. 그동안 일본 금융당국은 인플레이션 목표와 관련, '물가안정' 같은 애매모호한 용어를 사용해왔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경기부양 의지를 강조했다. 오카산증권의 호시나 마사유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마이니치신문에 "일본은행의 정책이 엔고시대를 마감하는 터닝포인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침체 목전까지 진입한 일본의 허약한 경제도 엔화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일본의 무역수지는 -2조4,927억엔으로 제2차 오일쇼크로 수입액이 크게 늘었던 지난 1980년 이후 31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미국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것도 엔화값을 밀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엔화값이 결국 달러당 80엔의 벽을 뚫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 유럽 재정위기의 불길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엔화를 대체할 만한 통화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향후 통화정책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FRB가 당장 양적완화(QE3)를 단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예상이지만 만일 예상보다 빠르게 시중에 돈을 풀 경우 엔화 공급 효과의 약발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