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제33회 저축의 날 행사가 열린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어색한 광경이 연출됐다.재정경제원 이환균 차관이 주빈격으로 참석, 연조로 보나 관록으로 보나 한참 「선배」인 김건 전 한은총재, 이상철 은행연합회장, 정지태 상업은행장, 이강환 생보협회장, 원국희 신영증권회장 등에게 산업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역임한 이경식 한은총재가 이날 어색한 행사진행을 그저 묵묵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다.
금융인들은 저축의 날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당일 행사장에 주무장관이 나오지 않은 전례가 있었는지 되새겨보고는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이 차관이 이처럼 「분에 넘친」 의전역을 맡게 된 배경은 이날 때마침 같은 시간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경제분야 대정부질의가 열려 재경원장관을 겸한 한승수 부총리가 여의도를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속사정 때문이라는 것.
한 측근은 『한 부총리가 국정감사 기간중 IMF총회 참석 등으로 자리를 비워 국회활동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다 하필 우연히도 대정부질의와 시간이 겹쳐 물리적으로 행사 참석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한 부총리는 취임 이후 역대 어느 부총리보다 대국회·정치권 관계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평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비준을 맞아 일일이 직접 각 야당대표를 만나 협조를 당부했고 정책정당을 표방하는 여당측을 만족시키기 위해 핵심 정책사안마다 뻔질나게 당정협의를 거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부총리를 비롯한 현경제팀은 2백억달러에 육박하는 국제수지 적자 등 당면한 경제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저축만이 유일한 타개책』이라며 비과세장기저축 도입 등 저축률 제고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현역의원인 한 부총리로서는 국회와 정치권 설득이 가장 긴요한 사안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정치논리」에 휘말릴 개연성이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는데 이날 행사에 불참한 것이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