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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무버(first mover)보다 병행자(parallel mover) 전략을 취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면서 방어적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 한국경제학회와 산업연구원·한국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세미나의 골자다.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는 성공했을 경우 보상이 크지만 그 반대일 경우 위험이 너무 커 아직 우리 실정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향후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중국 업체를 미리 인수하는 방안도 국내 제조업을 보호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됐다.
◇병행자 전략 필요…승자의 함정에 빠지면 위기=이근 서울대 경제추격연구소장은 이날 디지털TV와 아이리버를 예로 들며 병행자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병행자 전략이란 가능한 선택지에 대한 기술개발을 동시에 하면서 한가지로 방향이 정해지면 재빠르게 그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디지털TV가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디지털TV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들이 앞서가는 것은 지난 1990년대 디지털TV의 네 가지 표준이 논의될 때 네 가지 모두 함께 개발했기 때문이다. 표준이 결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상품을 내놓고 시장을 장악했다.
반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MP3는 지금은 잊혀진 기술이 됐다. 아이튠즈를 기반으로 한 애플에 시장을 뺏겼다. 인터넷전화 다이얼패드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원조인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도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지금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이 소장은 "최근 한국 기업은 신속한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버리고 선점자(first mover)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맹목적인 선점자 전략은 위험한 선택"이라며 "표준과 시장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디지털TV 때처럼 병행자 전략이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 세계 시장의 트렌드와 수요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게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작고 비영어권인데다 문화코드를 읽는데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다. 아이폰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삼성은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무시했다가 '아이폰 쇼크'를 겪었고 현대자동차는 초기에 하이브리드나 전기자동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 소장은 "한국 기업은 성공적인 기업일수록 기존 상품이나 시장에 집착하기보다 항상 새로운 시장과 제품을 찾아 움직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올라탔다"며 "승자의 함정에 빠져 성공공식을 잊으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선발자가 함정에 빠질 때 후발자가 올라타 패권을 잡는다"며 "성공공식을 유지해 삼성이 메모리반도체에서 20년간 세계 점유율 1위를 하는 것처럼 슈퍼사이클을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어적 M&A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삼성이 중국의 샤오미를 초기에 인수했다면 지금의 추격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글로벌 제약업체들은 후발 주자들의 특허에 거액을 지불한 뒤 이를 모두 사장시키는 전략을 취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별 융합전략 있어야…세부산업별 시나리오도 필요=백윤석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중국의 추격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산업별 융합전략을 주문했다. 백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산업과 의료산업처럼 산업 간 융합을 통해 중국의 추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국내 중소기업 및 신흥국 기업들과의 기술협조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업들은 그룹 내에서의 시너지를 더 창출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 교수는 "삼성이 자신의 강점인 휴대폰뿐만 아니라 카메라와 TV·프린터·세탁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라는 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애플에 대해서는 하나의 전선에서만 싸우지 말고 사물인터넷과 여러 제품과의 연결성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방식으로 삼성 제품을 사는 고객들에게 '통합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현지 산업 및 생활 패턴에 맞춰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출전략을 짜야 지속적인 수출확대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실장은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은 30대 이하 젊은 층이 60%인데 이런 시장에서는 화장품이나 식품·패션의류·영유아용품처럼 고객가치를 중시하는 수출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며 "파괴력이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차세대 핵심 분야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