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는 여성들에게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라고 했다. 유교 이념에 충실했던 여인의 일생은 글로, 구전으로 대대손손 칭송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보통 조선 여인의 일생은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이 왜곡한 '반쪽의 삶'이라 주장하는 이 책은 역사의 기록 밖으로 밀려나 있던 여성들의 삶을 찾아내 보여준다. 5만원권 지폐에 등장하는 신사임당을 얘기하면 우선 '현모양처'가 떠오르고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것은 16세기 노론계의 수장이었던 송시열 일파가 만든 '신사임당 만들기 프로젝트'의 결과라고 책은 얘기한다. 당시 신사임당은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유명했는데 "글이든 그림이든 여자의 것은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는 안되고 그렇지 않다면 여자 본래 임무를 방기한 것이 된다"는 논리로 파묻혔다. '초충도', '화조도'의 뛰어난 실력은 자녀 교육과 정숙한 행실을 위한 것으로 '포장'돼 담론이 형성됐고 결국 '화가 신사임당'은 사라지고 '훌륭한 어머니 신사임당'만 남았다. 조선에 효녀와 열녀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자경편(自警篇)을 저술하기도 한 사대부 부인 김호연재는 "평생 시집식구 속물근성을 감내했으나 부지중에 창자 속에 불길이 솟곤 했다"는 고백을 남겼다. 학문에 심취한 여인도 적지 않았다. 강정일당, 임윤지당 등은 조선의 여성 성리학자로 꼽힐만한 인물이고 선조 대 이옥봉은 빼어난 글솜씨로 남편에게 버림받았을 정도였다. 이외에도 성과 사랑을 팔아야 했던 기녀나 노동력을 착취당한 여인들, 외부접촉을 차단당했음에도 떼 지어 몰려다닌 여성들, 폐쇄적 구조 속에서도 놀이문화를 발굴했던 규중 여인들의 실상이 소개됐다. 각종 문헌과 기록화를 근간으로 찾아낸 숨겨진 역사들이라 더욱 흥미롭다. 2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