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기업 비자금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여가면서 재신임 카드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리더십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 `선(先)정치권 수사, 후(後)기업 사실확인`이라는 입장을 명확하게 표명했으나 검찰의 수사는 이와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히는데 기업 장부를 들쑤시고 다니지 않아도 가능하다”며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했으나 검찰은 최근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소환에 이어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잇따라 소환할 계획을 밝히는 등 기업들의 숨통을 바짝 조이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이와 관련, “최근의 검찰 수사가 노 대통령이 밝힌 정당수사후 기업 수사 원칙에 배치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 문제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윤 대변인은 이어 “정치권 수사후 기업 확인은 대통령이 개인적 소견을 밝힌 것으로, 방침으로 해석될 것은 아니다. 검찰에 대해 이렇게 해달라는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 대통령이 언급한 일반 정치자금 내지 보험성 정치자금을 낸 기업들에 대한 사면검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 돈을 대준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과 법률적 검토까지 거론했던 청와대가 불과 보름 여 만에 입장을 바꾼 데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의 설명대로 “수사는 검찰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해나갈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노 대통령의 `선(先)정치권 수사, 후(後)기업 사실확인`지침과 사면제의도 어불성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대통령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법을 거부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검찰수사를 묵인하고 있거나 오히려 부추겼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청와대가 국민들 앞에 `특검 없이도 검찰수사는 이렇게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관측이다.
한편 고건 국무총리나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재벌총수들에 대한 줄 이은 소환 등 검찰의 고강도 수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은 이 같은 재계의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검찰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 주목된다. 고 총리는 20일 국회 예결위에서 대기업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시일 내에 수사를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법무부장관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도 여러 통로를 통해 검찰 수사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