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사태’의 운명을 가를 이사회가 열린 12일 태평로 신한금융 본점은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전 7시.
출근길을 재촉하는 신한금융 임직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임직원들은 통상적인 아침 인사만 나눌 뿐 이날 열리는 이사회에 대해서는 일체 얘기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오전 9시께 정문을 통해 출근했다. 라 회장은 오전에 취재진들 사이에 잠깐 돌았던 ‘이사회 연기설’에 대해 “(이사회를) 열기로 했으니 열릴 것”이라며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지하주차장에서 곧바로 행장실로 출근해 취재진을 따돌렸다.
이사회가 열린 16층 회의실은 평소와 달리 유리문을 잠궈 외부인의 출입이 원천 봉쇄됐다. 청원경찰이 상주하면서 외부인사 진입을 차단해 다소 살벌한 분위기마저 연출됐다. 유리문 너머로 위성호 부사장 등 신한금융 인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분주히 16층을 오가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신한금융측은 이날 개인일정 때문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재일교포 사외이사 히라카와 요지 선이스트플레이스코퍼레이션 대표를 위해 전날 회의실에 화상회의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이사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오후 1시.
‘신한사태’ 운명의 주사위를 던질 사외이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사외이사들은 사안의 중대함을 알기에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함구한 채 심각한 표정으로 입장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전성빈 이사회 의장은 “안건을 정하지는 않았으며 양측의 얘기를 들어보고 충분히 논의하겠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고,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양쪽 의견을 들어보고 논의해야 한다. 오늘 진행되는 것을 보고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류시열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설명은 들었지만 (입장을)이야기하기는 어렵다”며 “회의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사외이사들도 이날은 발언을 자제했다. 정행남 사외이사는 “오늘 회의가 끝나면 다시 얘기하자”며 답변을 거부했고, 김요구 삼양물산 대표와 김휘묵 삼경인벡스 전무는 신 사장 해임안에 대한 반대 여부에 대해 “아직 얘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심을 끌었던 필립 아기니에 BNP파리바 아시아리테일부문 본부장도 “노코멘트하는 것이 회사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신상훈 사장은 외부에서 변호인단 등과 대응책을 논의한 후 정문을 거치지 않고 회의장으로 직행했다.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도 취재진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입장했으며 이 행장은 행 내에 머물다 바로 이사회장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라 회장은 외부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미리 설치된 포토라인 뒤쪽으로 우회에 엘리베이터로 회의장에 입장하는 바람에 일부 취재진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신 사장측 인사인 이정원 신한데이타 사장은 두 박스 분량의 자료를 들고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사장은 작심한 듯 “나의 인생을 걸고 당시 여신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사회에서 상황설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요청했는데, 이게 안 받아들여지면 이사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문료와 관련해서는 “고문료는 어른들이 주시는 세뱃돈과 비슷한 개념”이라며 “신 사장뿐만 아니라 라 회장도 고문료를 사용했으며 그 증거도 가져왔다”고 말해 이사회에서 이를 밝히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