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문화민주주의 환영너머에서

김영순 <예술의전당 미술전시감독>

새해 아침 뉴스 화면은 일출로 유명한 동해안 명소들이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각종 여흥과 이벤트로 약동한다.첫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해묵은 껍질을 벗고 신성한 기운을 받아 시작하려는 적극적인 삶의 모습은 안방의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새해의 일출뿐이겠는가. 우리를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것이. 여행이 그러하고 문화예술 체험이 그러하지 않은가. 사실 예술의 궁극적 존재가치는 바로 우리에게 현실과 일상으로부터 일탈해 거듭나는 체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지난해 가을 연구조사차 방문한 일본의 동해 남단 세토나이카이의 작은 섬 ‘나오시마의 일몰’은 현대미술담론에 식상해 망각한 문화예술의 이상과 그 기획의 가치를 환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주위 16.6평방, 지역주민 3,800명의 작은 섬. 어업과 보석 제련소가 유일한 지역산업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돼 있던 나오시마(直島)의 베네세하우스가 저물어가는 일몰의 한시간 동안 제공한 와인타임의 은사였다. 자연과 하나가 된 건축물 일몰의 장관만이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된 건축공간과 멀리 망망대해로 펼쳐지는 해안을 적절한 비례로 조절하며 바라보도록 배치한 조각품이 팽팽하게 긴장된 균형감을 자아냄으로써 자연과 인위가 극적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건축은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생콘크리트벽의 물질감은 바다와 바람과 햇빛 앞에서 명승지 정자의 건축구조를 닮아버렸다. 그리고 자연을 향해 무제한으로 열어놓으려는 건축가의 모처럼의 후덕한 인심은 심술궂은 아트디렉터에 의해 적당히 차단당했다. 건축과 자연 사이의 매개자를 자처하고 나선 기획자는 다름 아닌 베네세 아트사이트 나오시마의 아트 디렉터 아키모토씨다. 그는 동경예대를 마치고 작가로 활동하다 이 프로젝트의 초기에 참여했다. 공간과 공간을 끊고 매개하는 탁월한 판단력과 작품과 작품이 주어진 공간과 화해하며 공존하게 하는 미적 감수성은 단연 돋보인다.   13년간 기업과 건축가와 출연 작가들을 무대 위로 부상시키면서 자신은 무대 이면에 몸을 감추고 나오시마의 지역주민과 이 지역 행정을 매개하면서 세계 각지를 온몸으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나오시마 문화촌프로젝트는 중심에 미술을 테마로 한 숙박과 휴양시설을 갖추고 지하 30m에 지진이나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는 특수공법을 이용한 랜드 아트로서 건축된 지츄미술관(地中美術館)이 있다. 미술관 내부에는 인상파 화가 모네, 현대미술가 월터 데 마리아, 제임스 터렐 3인의 작품이 영구 소장 전시되고 있다. 흔히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돼버리고 마는 현대미술을 신성한 우상으로 연출한 이른바 현대미술신전이다. 각종 비엔날레, 기획전이 경쟁적인 담론으로 치달으면서 현대미술은 기획자의 짧은 식견의 경연장이 되고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한 말초적 목표로 대중문화 속으로 용해돼가고 있는 것이 이른바 문화대중주의시대의 미술의 현주소다.그런데 ‘진혼의 분묘’를 자처하고 나선 이 미술관은 미술이 다시 숭고한 존재로 부활해 우리 인간을 구원해줄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술관밖,주민들이 사는 주택가에는 이 지역 고가옥을 보존해 문화적으로 지역전통을 재생시키려는 이른바 이에(家)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가 엿보인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천혜의 경관을 찾아내 글로벌시대의 문화촌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이 작은 문화제국의 영주는 누구인가. 글로벌시대 문화촌 이상 실현 그는 후쿠다케서점 창업주 후쿠다케 테츠히코의 3대손으로 창업주가 세계 어린이들의 교육문화 체험장을 마련해 미래 인류사회에 기여하려던 이상을 문화예술프로젝트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재단을 통해 우리의 사립미술관 환경에서는 좀체 기대하기 어려운 경제지원을 하고 있다. 미술관 건설비용 150억원, 소장작품 구입비 1,000억원, 미술관 운영비 8억원 베네세하우스 및 이에프로젝트운영비 7억원이다.   이렇게 ‘나오시마프로젝트’는 3인의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연출되고 있다.전문가 이상의 높은 안목과 이상을 실현하려는 파트론,그의 이상과 장소성에 천착한 새로운 건축에 도전하려는 실험정신과 장인근성이 투철한 건축가,그리고 전위적인 미술가를 설득해 자연과 건축 사이에 미술로 마무리된 문화프로젝트를 이뤄가는 기획자의 긴장과 조화가 있었다. 거기에서 부동산투기를 하려는 사이비 문화지원자나 부정입찰과정을 거쳐 부실시공을 한 건축가의 뒷이야기,지역작가들의 몫을 요구하는 탄원이나 문화대중주의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참여는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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