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05년부터 매년 12월이면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는 노벨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상으로 무엇을 가늠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노벨상이 과학을 이야기할 때 인용 문구처럼 사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럴까. 대표적인 여성과학자를 떠올릴 때 ‘퀴리부인’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같다.
마담 퀴리는 1903년, 그리고 1911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100년이 넘는 노벨상의 역사 중 여성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겨우 12번뿐. 그중 마담 퀴리가 2번 수상했다. 그러니 그가 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마담 퀴리를 여성과학자의 표상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마담 퀴리를 제하고 나면 대중적으로 선뜻 다른 여성과학자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동안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인력이 극히 드물었기도 했지만 노벨상을 탄 왓슨과 크릭의 DNA의 모델 제시에 앞서 결정적 실험결과를 내고도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되었던 로잘린드 프랭클린 등 여성과학자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도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마담 퀴리나 로잘린드 플랭클린이 활동하던 때와 비교해보면 현재 여성들이 과학자로 활동하는 여건은 몰라보게 진전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많은 난관 속에서도 도전하고 여성과학자로서의 영역을 개척해온 선배 여성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본격적인 과학연구의 역사가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과 여성의 사회참여 역시 그 역사가 매우 짧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여러 분야에서 여성과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다.
여성인력의 효율적인 활용은 전세계가 첨예의 관심을 쏟는 글로벌 이슈다. 우리나라는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출산율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어 창조적 노동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것이다. 이럴 때 여성이 사회적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큰 손실이며 과학기술계 분야에서도 우수한 과학여성 인력을 육성하고 활용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여성들의 사회적 능력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검증되고 있다. 2004년 판검사 임용자 중 여성의 비율이 40%가 넘었고 2005년 외무고시 합격자의 반 이상이 여성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대학교의 졸업식에서는 16개 단과대학 중 12개 단과대학의 수석 졸업자가 모두 여학생이었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학자로 공부하고 연구해온 삶이 매우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늘 새로운 무언가를 연구하기 위해 고민하게 하는 과학은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요구해 도전하는 삶을 살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변화하는 미래를 준비하게 해주었다. 아울러 논문과 연구실적으로 평가되는 만큼 성별에 관계없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여타 분야보다 더 많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6T(ITㆍBTㆍNTㆍETㆍSTㆍCT)로 대표되는 첨단과학기술과 이들 분야간의 융합이 지배할 것이다. 소위 ‘소프트 과학’은 20세기적 과학에 비해 여성의 섬세함과 유연한 사고, 그리고 직관적 포용력을 더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이에 과학기술부에서도 2004년부터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여성과학기술인 채용 목표제, 여성기관장 임용 등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여성이 과학 분야로 진입해 성공할 수 있는 도전적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평생 도전이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고 믿어왔다. 앞으로 과학계에서 더 많이 도전하고, 또 성공하는 여성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