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라고 경제가 좋아졌다고 으스대고, 자랑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결코 우쭐땔 때가 아닙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불황을 탈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몰입했다면 이제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61년 만에 찾아온 개기일식이 있었던 지난 22일 윤증현(사진) 기획재정부 장관을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만났다. 윤 장관은 인터뷰 도중 '경제에는 답이 없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최선의 경제 정책을 펼치려고 노력 하지만 결과로만 평가되는 것이 경제라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출구전략, 감세유보 등의 정책에 대해서도 섣부른 정책 전환은 곤론하다는 뜻을 완곡하게 밝혔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 출구전략에 대한 타이밍 등에 대한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누구 말이 옳은지 보다는 어떤 정책을 폈을 때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 장관은 그러면서도 서비스 산업이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어조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특히 "저출산 극복을 위한 종합대책을 검토, 곧 발표할 것"이라고 소개 한뒤, "임신부터 출산, 보육까지 각 단계별로 맞춤형으로 정책을 집행하도록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2ㆍ4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 속보치가 전기 대비 2.3% 성장하는 등 긍정적인 지표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설비투자ㆍ고용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국제금융시장 불안요인ㆍ유가상승 우려 등으로 2분기 회복속도가 하반기에도 지속된다고 자신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GDP가 전년동기대비로는 여전히 마이너스고 재정 조기집행과 추가경정예산으로 간신히 돌려 세웠습니다. 취임 당시에는 불황을 탈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몰입할 수 있었는데 어느 정도 상황이 호전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지금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타이밍과 방법이 중요할 텐데요. 금리 인상 시기는 언제쯤으로 내다보시는지요. ▦단기적으로 유동성 관리가 필요하며 금리정책 말고도 총액한도대출, 채권조달 등 제도적인 장치가 많습니다. 금리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아직 전세계 어느 나라도 금리를 인상한 곳이 없습니다. 정부는 경기회복세가 가시화될 때까지 당분간 확장적 거시정책기조를 견지할 계획입니다. 다만 부동산 시장 등 부문별 불안요인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기능을 존중해줘야겠죠. -하지만 이미 부동산 시장은 끓어오르는 모습인데요. ▦수도권 주택담보인정비율(LTV)를 인하(60%→50%)한지 한달이 채 안됐습니다.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부동산은 우리 경제에 아킬레스건입니다. 문제의 중심은 강남3구입니다. (강남3구)부동상 가격동향, 거래량을 체크하고 있고 차후에 이상조짐이 보일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전세 값이 폭등하며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수 년간 재건축 과정에서 공급이 모자라 수요ㆍ공급 균형이 맞지 않았습니다. 적절한 공급이 필요합니다. 국토해양부에서 점검계획 만들고 있습니다. 부동산 아직도 침체입니다. 부동산 정상화는 경기선순환의 고리가 될 것입니다. -시중에 돈이 부동산과 함께 투기적인 주식시장으로 몰리며 버블 논란도 있는데요.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 모두)정상화 과정에 들어서는 단계입니다. 다만 우리 주식시장은 지나치게 유통시장에만 집중되다 보니 투기적 거래가 커집니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호황기에 기업들이 성장하며 기업공개(IPO)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 해 다시 투자를 늘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시장이 개방되다보니 외국인 투자자들만 좋았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에 따른 변동성이 커지고 이러한 변동성이 외환시장을 거쳐 거시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만큼 돈 빼가기 좋은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수를 키워야 합니다. 변동성을 줄이려면 외국인 투자부분을 내국인이 메워야 합니다. 현재 외국인 투자비율이 30%인데 23~24%가 적절하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듯 해외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에 제동을 걸 수는 없습니다. 개방을 되돌리기엔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감세유지냐,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증세냐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명확한 세제 정책 기조를 설명해주신다면. ▦이 시점에서 정부정책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추진한 소득세ㆍ법인세 인하 등의 감세 기조는 그대로 갑니다. 이는 정책일관성과 대외적인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은 입법부의 몫이므로 세제의 최종권한은 국회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을 국회 때 이와 관련해 치열한 논쟁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정책에 경제 정책 집행의 방향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상충될 수 밖에 없습니다. 행정부가 경제정책을 입법부가 법안을 담당하다보니 경제 정책에 정치논리가 개입됩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의 촉매였던 클린턴 정부의 지역재투자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치논리와 경제논리가 적절한 균형점을 가지고 투트랙으로 가야 합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산업구조 재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체제 정비 방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설명해주십시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주도형 경제가 글로벌 위기 때 취약하다는 점이 입증된 만큼 이번 경제위기에서 교훈을 얻어 대외의존도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대외의존도 축소가 수출을 줄이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은 불황형 흑자구조이기 때문에 수출도 늘리면서 수입도 느는 정상적인 흑자 구조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을 키워서 경제규모에서 차지하는 내수 비율을 높이는 게 필수적입니다. 제조업은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과거 10억원을 투자하면 제조업의 경우 27명이 고용됐는데 이제는 10명 정도에 그칩니다. 반면 서비스업은 20명 정도입니다. 국제 수지에 영향을 덜 주면서 내수시장을 키울 수 있는 것, 고용효과가 크면서 제조업을 덜어줄 수 있는 것, 정답은 서비스 산업입니다. -서비스업 선진화를 취임 초부터 강조를 하셨는데요. 당초 예상보다는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입니다. ▦의료, 교육이 핵심입니다. 보건복지부와 11월까지 공동용역 연구가 진행되고 결과가 나오면 정책 방향이 결정됩니다. 일단 건강보험은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법인)을 도입해 의료부분의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하는 영어마을은 비용만 쓸 뿐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미 영국의 보딩스쿨(기숙형학교)가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해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최대 고민이 저출산ㆍ고령화, 즉 인구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해 보입니다. ▦정부도 교육비 부담 경감, 양육친화적 근무환경 조성, 의식개혁 등 저출산 극복을 위한 종합대책을 검토하고 있고 곧 발표를 할 것입니다. 현재 복지부 주관으로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책을 마련 중입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임신부터 출산, 보육까지 각 단계별로 맞춤형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불임 부부에 대한 임신ㆍ출산을 지원하고 맞벌이 부부, 한부모 가정 등을 위한 야간 보육 서비스 확충 등 보육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아울러 보육서비스 질을 개선하기 위한 보육료 자율화, 민간 투자 유치 등 제도 개선을 병행할 방침입니다. 대책이 확정되면 내년 예산을 편성할 때 가용 재원 범위 안에서 최대한 지원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 한국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추진에 싱가포르 "진료비 할인" 맞불 - 尹재정,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에 '애착'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대 어느 경제 수장보다도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 대책에 애착을 갖고 있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그의 '집착'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 이후 가진 오찬 자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중식당의 요리가 드러서자 마자 "이 요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조리법은 어떻게 되며, 몸 어디에 좋은 것인가요?"라며 종업원에게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이어 "주문을 받을 때 자리 위치까지 메모해야 돼요. 음식점도 서비스업인데 우리나라 종업원들은 메모도 안하고 주문 받은 뒤 음식 나오면 그제서야 자장면 시키신 분 찾아요"라며 서비스 문화의 후진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공개강연 자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한다. 강직한 이미지에 걸맞게 장관 취임 이후 서비스 산업 이슈에 대해서만은 한결 같은 발언을 해왔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는 심하게 표현해 '웬수 지간'이 돼 버렸다. 이날도 서비스 산업 이야기가 나오자 윤 장관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는 "우리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하겠다고 하니 싱가포르에서 진료비를 30% 할인해준다고 한다"며 "훌륭한 인재를 바탕으로 의료산업을 세계에 우뚝 설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키울 수 있음에도 우리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윤 장관은 또 "해외에 가면 박카스, 소화제, 감기약, 영양제 등 일반의약품(OTC)을 편의점, 상점에서도 다 판다"면서 "한국도 판매장소를 다원화하면 판매량이 20~30% 늘어나 기업 매출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텐데 왜 그거 하나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비스 산업 선진화에 대한 윤 장관의 논리는 결국 서비스도 개방을 통해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변리사, 회계사, 약사, 변호사 등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도 개방해 경쟁체제로 가야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허용안이 제주특별자치도의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윤 장관은 "(처음에 무작정 반대했던) 의사들이 찾아와 그때는 미안했다며 열심히 돕겠다고 할 정도"라면서 "도민들의 인식이 좋아져 제주도에서 통과했으니 이제 국회차례"라고 강조했다. ■ 윤증현 장관 약력 ◇약력 ▦1946년 경남 마산 ▦1969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6년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공공정책ㆍ행정학 석사 ▦1971년 행정고시 10회 ▦1992년 재무부 증권국장, 금융국장 ▦1994년 재경원 금융총괄심의관,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1998년 세무대학장 ▦199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 ▦2004년 금융감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