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韓ㆍ러 ‘정치자금 수사’ 차이

“대통령은 야당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준 혐의가 있는 최대 석유회사를 조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회장이 전격 구속되고,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총선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야당의 공격은 물론 집권 여당 내의 분열이 가속화되고, 대통령의 신뢰도가 위험 받고 있다.” 지금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얘기다. 야당에게 정치자금을 준 혐의로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이 전격 구속된 후 러시아의 주가가 폭락하고, 해외 투자자들이 러시아를 떠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집권당 내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조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는 12월 총선을 앞두고 러시아의 정치 싸움이 경제 위기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코스 사건은 한국의 정치자금 사건과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한국에선 러시아와 달리 기업 정치자금 사건이 금융시장에 거의 충격을 주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 후 주가가 오히려 큰 폭으로 올랐다. 러시아와 한국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러시아에는 국제 석유 카르텔이 개입하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코스는 사업 확장을 위해 지분 40%를 매각키로 하자, 미국의 석유 메이저인 엑슨-모빌, 셰브론텍사코와 영국의 BP등이 달려들어 지분 매입 또는 원유 도입 계약을 맺었다. 해외 투자가들은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의 구속을 계기로 러시아 자본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장을 흔든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 시장에는 국제 카르텔이 개입할 이해 관계가 없고, 정치자금 사건이 시장 경제의 기본 틀인 계약을 왜곡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검찰 수사로 정치권과 기업 간의 검은 돈 거래가 청산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사라지는 계기가 된다는 게 외국 투자가들의 시각이다. 둘째, 러시아에선 특정 기업과 정당을 겨냥해 집권세력이 권력의 칼을 휘두른 데 비해 한국에선 여당이건, 야당이건 공정하게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가 기업에 대한 수사 확대와 정치권의 빅뱅으로 이어지고, 러시아처럼 시장을 동요 시킬 소지는 남아있다. 한국이 러시아처럼 되지 않는 길은 검찰의 조사가 공정해야 하고, 이를 계기로 기업이 정치권에 검은 돈을 건네는 관례를 청산,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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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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