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프로농구 선수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고소사건 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피해자와 피의자를 모두 불러 각종 상황을 재연토록 현장검증을 실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성폭행 사건에서 고소인의 현장검증 참여나 피의자와 대질은 피해자에게 악몽을되새기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제되고 있다.
26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프로농구 선수 A씨(전 국가대표)를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10대 소녀 B양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현장검증 과정에서 처참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수년 간 A선수 팬클럽 회장을 맡아온 B양은 진정서에서 "올 6월28일 현장검증을실시하는 과정에서 담당 검사 지시로 A선수와 함께 당시 상황을 상세히 재연해야만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장검증에서는 B양의 고소내용에 따른 상황뿐 아니라 A선수 주장에 따른상황까지 당사자들에 의해 재연됐는데 이는 성폭력 사건 수사 관행상 이례적인 일이다.
현장검증은 "A선수가 뒷좌석에 비스듬히 누운 B양을 내리누르는 자세로 성폭행했다"는 고소인 B양측 주장과 "A선수가 운전석에 앉은 상태에서 B양과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A선수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 실시됐다.
B양은 "담당 검사가 현장검증에서 `구체적인 자세를 취해 보라'는 등 수치심과공포를 일으키는 지시와 질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B양은 "2003년 7월 발생한 성폭행 이후 A선수가 `사랑한다'며 지속적인 성관계를 요구했고 올초엔 농구선수에게 법률상 금지된 `토토'(승부 알아맞히기 복권) 구입을 내게 시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사건 담당 검사인 박모 검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 주장이 크게 달라현장검증을 실시했으며, B양의 참여는 B양측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비상식적 요구나 질문은 결코 한 적 없고 현장에서도 B양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세를취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현장검증에는 B양 모친과 지역 여성단체 관계자도 참여했고 현장에서는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다"며 "비디오 촬영이나 확인서 등으로 `이의가없다'는 확인을 받아 두지 못한 게 내 실수"라고 말했다.
박 검사는 "이미 2년이나 지난 일인 데다 A선수와 B양이 그 이후로도 관계를 지속해 왔기 때문에 사건 실체를 판단하기가 무척 어려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A선수는 연합뉴스와 전화에서 "B양이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며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어서 자세한 것은 전화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B양의 법률지원을 맡고 있는 강지원 변호사는 "성폭행 사건의 경우 대질신문에서도 칸막이를 사용하는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현장검증을 실시하고 성폭행이나 성행위 장면을 일일이 직접 재연토록 한 것은 인권옹호를 사명으로 하는검사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수사검사를 즉각 교체하고 인권침해 혐의로 엄중 문책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