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노조 이젠 변해야 한다] 방향성 상실한 투쟁노선
'사회적 약자 自救' 초심잃고 나눠먹기식 노동운동 변질수단등 단기이익 골몰 회사경쟁력 저하 불러해고후에도 각종 혜택 강성 파업 부추기기도
노동운동을 ‘사회적 약자’의 자구(自救)운동이라고 하는 건 옛날 이야기다.
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이 되면 최고급 승용차 ‘오피러스’가 제공된다. 비단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노조위원장을 특별 대우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위원장에게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차량과 임원급 판공비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채용비리 사건이 발생한 기아차는 노조 전임자만도 70여명에 달한다. 노조위원장에 대한 예우는 전임 노조원들에게도 비슷하게 제공된다. 대기업 전임 노조원들은 근속연수에 따라 평균 5,000만~6,000만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노조 전임자가 노동자 600명당 1명, 미국은 1,000명당 1명이다. 한국은 180명당 1명이다.
지난해 발생한 대기업 노조의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 대기업 노조의 변질된 모습을 보여줬다.
전체 노조원들의 평균연봉이 6,920만원에 달하는 LG칼텍스정유 노조는 10.5%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 사회적인 비난을 받았다. 결국 여론에 밀려 ‘백기투항’으로 결말지어진 LG칼텍스정유 노조의 파업은 우리 사회에 깊게 파고든 ‘귀족노조’가 보인 집단이기주의의 한 단면에 불과했다.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는 생산성 차질로 직결되고 기업경영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지난해 현대차는 유럽에서 소형차 ‘클릭’의 주문이 밀려들자 선적일자를 맞추기 위해 인도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클릭용 ‘입실론’ 엔진을 부산항으로 가지고 들어왔으나 결국 하역하지 못하고 인도로 되돌려보내야 했다. 노조원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해외 생산품 반입을 반대한 노조원들이 일손이 모자라는 클릭 생산공장에 작업자들을 전환 배치하는 것마저 반대했다는 데 있다. 일이 밀려드는 생산 라인의 근로자들이 야간특근 수당(정규시간 대비 1.5배)을 받기 위해 다른 생산 라인 근로자들의 전입을 가로막은 것. 작업자 전환배치 문제에서도 경영자가 노조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 게 오늘날 대기업 노조의 현실이다.
조합원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명분으로 노조가 자신들의 단기 이익에 몰두, 회사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에도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또 일부는 향후 정치ㆍ사회적 활동을 고려해 노골적으로 색깔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부 대기업 노조들은 조합활동 관련 해고자들에게 혜택을 제공, 강성 파업활동을 부추기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등 금속연맹, KT 등 주요 대기업 노조들은 자체 규정에 따라 조합활동으로 인한 해고자들을 조합원으로 근속시키고 매달 해고 직전 받던 임금의 100%를 지급하고 있다.
특히 조합활동으로 징역 등 실형을 치른 해고자에게는 임금 100% 외에 100%를 더해 총 200%를 지급하는 노조도 있다. 이들 해고자가 받는 연봉은 ‘신분보장기금’ ‘희생자구제기금’ ‘생계적립금’ 등 다양한 이름의 조합기금에서 출연돼 비과세 혜택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직전 연봉보다 20~40% 이상 더 많이 받는 셈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 160만명 중 대기업 노조원은 72%나 된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나눠먹기식’ 노동운동이 파업으로 이어질 경우 결국 소수의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회사가 도산하면서 밀린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거리고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종업원 10명 미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500명 이상 대기업 노동자의 50.7%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있었다. 99년 59%였던 데서 또 떨어진 것.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 이 나라 노동운동의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한동수 기자 bestg@sed.co.kr
입력시간 : 2005-01-25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