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선경그룹:5/예멘공 마리브광구(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산업 혈액」 하루 16만배럴 “펑펑”/해저 유전서 「노다지」 캔다/최근 대규모 LNG가스층 발견… “곧 상용화” 부푼꿈/“이젠 독자적탐사 가능” 9개국 19개 광구 개발 박차도아라비아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예멘아랍공화국의 수도 사나. 이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2백50㎞를 달리면 사막 한가운데 50∼60m 높이의 시추탑과 크고 작은 탱크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기계장비들이 널려있는 광구안은 눈동자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모든 것이 낯설다. 그러나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 보면 시추탑 한켠에 걸려있는 「YUKONG」(유공)이란 깃발이 유난히 시설은 끌게 된다. 80년대 세계 3대 유전의 하나인 예멘 마리브광구. 이 곳은 국내 정유업체인 (주)유공이 검은빛 산업의 혈액을 캐내는 현장이다. 자금을 대고 생산한 석유를 지분만큼 가져오는 이른바 지분참여 방식에 의해 국내에 앉아서 석유를 캐내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은 예멘중부의 지명도 없는 사막지역에 번듯한 건물 하나없이 대형장비들만 널려있는 겉모습과는 달리 삭막한 지표 아래에는 가채매장량이 8억3천만매럴의 대규모 유전과 약 10조입방미터의 대형 가스층이 발견, 현재 하루 16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세계의 몇 안되는 노다지 광구로 이름이 높다. 우리나라의 해외 석유개발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케이스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84년 유공을 대표주자로 삼환과 석유개발공사, 현대종합상사 등 4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24.5%의 지분을 참여한 마리브광구는 현재 진행중인 원유생산 광구외에도 대규모 LNG가스층이 발견돼 현재 이를 캐내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가스는 오는 2000년대 초부터 액화처리해 해외로 수출될 것이라고 유공의 석유탐사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이종순 석유개발사업팀장(이사)은 설명한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예멘은 기름이 나오지 않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세계적인 석유탐사회사인 미국 헌트사는 석유매장 가능성을 확신하고 사업에 착수했지만 대부분의 석유회사들은 헌트사의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를 꺼렸다. 헌트는 당시 「왕초보」였던 유공에까지 지분참여를 제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유공의 석유개발사업팀은 6개월여에 걸친 면밀한 조사와 기술자료를 검토한 한 끝에 참여결정을 내렸다. 경험이 전무한 상태라 많은 고민을 했다고 이이사는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유공은 헌트사와의 지분계약에 싸인을 한 후 이틀이 지나지 않아 양질의 기름이 매장돼 있다는 징후를 발견했고 4개월여 후인 84년 7월에는 경제성있는 석유가 쏟아져 나온다는 낭보를 접하게 된다. 유공 관계자들은 당시 상황을 동해에서 석유가 대량으로 발견된 듯한 잔치집 분위기 였다고 한다. 사상 처음으로 시작한 해외유전 개발사업이 너무도 쉽게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석유시추가 성공을 거두자 헌트의 태도는 돌변했다. 유공은 두 번째 광구개발에도 첫 번째와 같은 조건으로 지분참여하기를 원했지만 헌트는 지분외에 추가로 15억달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유공은 이번에 거절했다. 욕심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15억달러가 너무도 큰 거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공 대신 미국 엑슨사가 참여한 두번째 광구에서는 기름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유공이 석유개발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석유탐사에 대한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였다. 마리브광구 참여당시 최종현 회장은 『앞으로 10년간은 실패해도 좋다』고까지 하면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사실 석유개발사업은 사실 도박과 다름없다. 석유개발사업은 탐사에서 개발, 생산단계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대규모 자본투자를 요한다. 매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개발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탐사에 들어가지만 성공확율은 그리 높지 못하다. 더욱이 지분참여업체들은 시추공에 손 한 번 대보지 못한채 지분비율에 따라 관련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석유가 쏟아져 나올 경우에는 엄청난 돈을 벌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동안 투자한 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된다. 최회장은 이런 석유개발사업을 노름에 비유하고 있다. 그는 석유개발사업팀을 발족시키면서 『노름을 셋이서 할 때 내가 제일 약하다고 한다면 1백% 위험을 안게된다. 이때 내가 빠지고 전문노름꾼 셋이서 노름을 하게하고 이중 제일 나은 사람에게 붙어서 그가 투자하는 지분의 20%를 부담한다면 3대 1의 기회에 리스크를 20%밖에 부담하지 않으므로 성공률도 높고 노름의 기술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관계자들을 독려했다. 이렇게 석유개발사업을 시작한 유공은 마리브광구를 시작으로 그동안 숯한 우여곡절을 격으며 본격적인 해외석유개발사업을 벌여 나갔다. 지난 89년에는 25%의 지분참여로 영국의 브리티시가스사와 이집트에서 원유개발사업에 착수, 90년 시험생산을 거쳐 지난해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또 리비아 동북부 육상광구의 유전개발 사업에도 참여해 지난해 석유를 개발했으며 유개공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에콰도르 육상 11광구에 대한 원유탐사작업도 진행중이다. 유공은 이들 외에도 리비아와 페루, 코트디브와르, 적도기니 등 모두 9개국 19개 광구에서 원유탐사·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해외 석유개발사업은 원유공급이라는 직접적인 성과 외에도 국내 석유공급원의 확보라는 안보적인 측면과 원가절감을 통한 정유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중동 산유국과의 외교관계 성숙이라는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독자적으로 석유개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의 축적이라는 것이 현장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석유개발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석유유무를 해석하는 기술과 외국업체와의 교섭능력, 그리고 경험을 통해 세계 곳곳에 대한 지리적 정보(Regional Geology)의 습득 등 3가지가 핵심기술로 꼽힌다. 유공은 마리브광구를 시작으로 13년여 동안의 실패와 성공을 토대로 이들 3대 핵심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유공은 지금까지 단순한 지분참여 형태로 추진해온 석유개발 사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탐사에서 석유생산에 이르는 전과정을 직접수행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이미 지난 91년에는 미얀마에서 직접 오퍼레이션을 펼쳐 석유를 탐사한 경험도 갖고 있다. 유공은 이를 통해 앞으로 하루 10만 배럴의 원유를 해외개발사업에서 조달해 다가오는 2000년대에는 세계적인 메이저회사로 도약한다는 장기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인터뷰/이종순 마리브광구 사업팀장/“원유공급선 확보차원 정부 자금지원 등 노력 아쉬워” 『마리브광구의 지분참여 당시에는 경험과 기술이 부족해 그저 행운만을 기대하는 조급한 마음으로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독자적으로 석유탐사를 할 수 있는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히 서게됐습니다.』 유공의 석유개발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종순 석유개발사업팀장은 기술도 경험도 없이 의욕만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사업초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석유개발사업이 시작됐지만 마리브광구는 우리나라 석유개발사업의 모태이자 대표적인 성공케이스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팀장은 해외 석유개발사업은 단순히 개별기업 차원을 넘어서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한다. 석유·가스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원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해외 석유개발사업은 값싼 원유의 공급선 확보라는 측면 보다도 국가 안보와 전략적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석유개발사업은 사업기회를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세계적인 거대기업들이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을 앞세워 세계 주요 광구를 독점하고 있어 후발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어려움을 격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외 석유개발사업의 어려움을 설명한다. 이팀장은 이에따라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해외 석유개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발기업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아쉽다고 지적한다. 즉 대형 석유개발 사업에서는 해당국 정부와 정부간 채널을 통해 교섭을 지원하거나 세제, 석유개발기금을 통한 자금지원 등도 개별기업의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어대 무역학과 출신이지만 입사후 줄곧 해외석유개발사업을 담당해 사내에서는 엔지니어니어로 통하는 이팀장은 『앞으로 석유탐사에서 생산에 이르는 개발사업 전반을 직접 도맡아 그동안 쌓은 기술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사나(예멘)=민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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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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