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수필, 감성보다 지성적인 글 많아져야"

수필문우회 회장 선임 고봉진씨


"'수필은 아름다운 글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감성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글이 많이 나와 수필계가 더 풍륜(豊輪)해졌으면 합니다."

최근 수필문우회 회장에 선임된 고봉진(72) 회장은 8일 '에세이=감성'이 마치 법칙인 양 글을 쓰는 수필계가 스스로 울타리를 치는 듯해 안타깝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필문우회는 학술원 회장을 역임한 고(故) 김태길 전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981년에 만든 동인회로 현재 산하 모임인 '계수회'를 포함해 약 100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1995년부터는 계간지 '계간 수필'도 발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이사를 역임한 고 회장은 "철학자이셨던 김 전 회장께서 '글 좋고 사람 좋은' 사람들이 모이자고 해서 만들었다"며 "회원들이 매월 한차례씩 만나는데 신작들 한편을 골라 발표하고 토론하기를 횟수로 29년이 됐다"고 설명했다.


회원의 연령대는 40~80대로 연륜이 느껴지지만 홈페이지(www.essayclub.or.kr)를 보면 '글맛' 나는 수필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화려한 겉치레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느낌이 단박에 든다. 그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돈과는 상관없이 운영해왔다"며 "잡지를 발행해도 판매를 위해 돈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싣지 않을 만큼 지조를 지켰던 창립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해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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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 자유로운 수필은 외연이 넓은 편이지만 대부분 수필 하면 감성에 호소하는 글 정도로 여기고 만다. 이에 대해 고 회장은 "수필은 논문부터 감성수필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넓다"며 "수필 동호회는 많지만 작품성향이 비슷한 감성적 수필을 양산해내다 보니 독자들의 외면을 받기 쉽다"고 지적했다. '논문도 수필이 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미셸 몽테뉴, 프랜시스 베이컨 등 철학자들이 쓴 글은 논문에 가깝지만 훌륭한 수필"이라며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논문이지만 훌륭한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지적인 수필은 우리 수필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수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다. "직ㆍ간접적인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수필에 픽션이 포함돼도 좋다고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실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글로 정리해 표현하는 것이 수필이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논문은 훌륭한 수필입니다."

수필문우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대학생 수필현상모집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걸작으로 꼽히는 김승욱의 '무진기행'은 대학시절에 쓴 글"이라며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젊은이들 세계를 보여주는 글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못 미쳐 당선작을 뽑지 못했다"며 "첫술에 배 부를 수 있겠나. 내년에는 당선작이 나오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필은 중ㆍ노년의 문학이 아니라 짧고 진솔하고 서정ㆍ서사ㆍ논리가 아우러지는 문학의 원심으로 미래 문학의 주류라 할 수 있다"며 "바쁘고 고달픈 인터넷 시대에 말라가는 서정을 되찾고 자유로운 문체를 회복할 수 있는 글이 바로 수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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