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우리나라는 50대쯤 되면 월급이 급상승, 조기퇴직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 노하우, 인적자원이 소실되는 국가적 낭비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은 아무도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력한 요구도 없어 잠복 돼 있지만 머지않아 닥칠 문제 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분야 최고 참모인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년을 연장하거나 임금 상한제 등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학자에서 정책결정자로 변신한 지 두 달. 산적한 현안에 대한 그의 견해는 어떤 것일까. -경기침체와 기업들의 투자부진에 따라 취업난이 최악의 수준입니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이에 대한 대책은 없는지요. ▲실업률이 통계상으로는 높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이렇게 실업률이 낮은 나라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업은 민감한 문제입니다. 실업만큼 고통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해 진 것은 사실입니다. 대학에서 졸업생들 취업난 보면서 느껴 왔습니다. 당장 뾰족한 대책은 없습니다. 대기업체 채용관행의 변화로 중간경력자 채용이 증가한 것이 큰 요인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장 좋은 방안이 되겠지요. -최근 삼성에서 더 뽑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이 이처럼 스스로 나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정부가 분위기를 조성해서 유도하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기업체 채용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부적절 합니다. 투자기회가 많아지고 일자리가 늘어 저절로 더 채용하는 게 바람직 합니다. -구조개혁과 경기안정을 동시에 진행시킨다고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만. ▲경기안정을 한다고 해서 개혁을 연기한다든지, 포기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면 안 됩니다. 속도조절론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시각이 있고, 특히 외국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개입하려는 것으로 비치기 쉽습니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분명히 구조개혁을 한다, 경기안정도 필요하면 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외국 기업들은 우리나라에서 기업하기 어려운 가장 힘든 대목으로 노사관계를 꼽습니다. 춘투가 재연될 경우 경제가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는데.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이 투자하기 좋은 매력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인데, 투자를 망설이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 중 하나가 노사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형성돼 온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적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재의 노사관계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건 노사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투적, 비생산적 노사관계 틀을 바꿔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쌍방이 허심탄회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나라를 위해서 양보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정부가 이러한 장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새 정부 들어 두산의 경우에서 보듯 너무 노조쪽 편을 든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노조측의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민영화도 거품이 된다는 시각도 있고. ▲최근 우려 목소리가 높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민영화 기조를 유지해 갈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개 산업의 경우 장단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돼 온 철도, 가스, 전력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다른 분야의 경우 민영화가 완료됐거나, 계획대로 추진돼 가고 있습니다. 민영화의 기조가 흔들리는 거 아니냐는 논리는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 노조측에 너무 양보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그 문제는 답하기가 민감하네요. -민영화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뜻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각 분야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철도도 다르고, 전력, 가스도 다르고. 하지만 민영화의 기조는 변함이 없습니다. 재검토라는 말도 부적절합니다. 하지만 찬반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동산 보유세는 강화하고 조세저항에 대비 거래세는 인하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 시행될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원론적으로 말해 보유세가 너무 낮습니다. 전체 부동산관련 세입 중 보유세는 17%에 불과하고, 나머지 83%는 거래세 입니다. 다른 나라는 보유세가 중심이고 거래세는 비중이 아주 작습니다. 높은 거래세는 부동산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등 부정적인 효과가 굉장히 많습니다. 보유세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급격한 변화는 안됩니다. 일본식의 하드 랜딩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해에 3% 포인트씩 올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높여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1가구 1주택 정도를 갖고 있는 중산층의 세부담이 늘어서는 안 됩니다. -법인세 인하계획은 올 세제개편 내용에 들어갑니까. ▲법인세는 논란이 되는 문제입니다. 학계에서는 이중과세라는 점에서 논란이 됐고, 이 때문에 인하ㆍ폐지 주장도 제기돼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은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 아닙니다. 인근 홍콩 등에 비교하면 조금 높지만, 법인세를 인하하면 형평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올해 안에 세제개편 논의 계획은 제가 알고 있기로는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경쟁력 증대 관점에서 다른 세목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 주요 현안 처리를 위한 경제통제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런 우려는 별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컨트롤 타워는 경제부총리입니다.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청와대에서 수석이 정책에 상당히 많이 관여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부터는 이 같은 경향을 원칙적으로 없애려 합니다. 경제부총리 쪽에 훨씬 많은 권한을 주고, 청와대에서는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파악은 하되 새로 생긴 7개 국정과제 쪽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과도기라 패턴에 익숙치 않아 나오는 우려라고 봅니다. 시간이 가면 수그러들지 않겠습니까. -노인인구 비중이 높아지고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는 고령화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지요. ▲원래 청와대 태스크포스 구성 목표가 10개인데, 이미 구성된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위원회등 3개 추진위와 4개 기획단을 빼고 3개가 남아 있습니다. 남은 자리에 고령화 대책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입니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 정년 연장을 유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민간 기업이 주로 결정할 문제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 증가에 따른 소득을 나타내는 곡선이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선진국은 우리에 비해서는 완만합니다. 임금 피크제 등을 도입해서 이를 완만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하반기 경기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하반기 경기전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립 중입니다. 체감경기가 나쁘지만 가계소비와 부동산의 거품 꺼지는 과정을 볼 수도 있습니다. 받아들여야 되는 고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도가 지나칠 때는 정부가 부양책을 쓸 필요가 있을 것 입니다. 필요하면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고, 북 핵 문제도 생각보다 잘 풀릴 것 같은 조짐 있습니다. 우리의 통제 범위 밖에 있던 변수들이 유리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 발자취 미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난 해 여름 `노무현 캠프`에 뛰어 들기 전까지 줄 곧 경북대 강단을 지켜온 학자 출신이다. 변형윤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맥을 잇는 진보적 학파 `학현(學峴) 사단`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며, `도시빈곤층 대책에 관한 연구`등 다수의 개혁성향 저서를 발표했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에는 조순 교수와 각별한 인연을 맺으며, 조 교수의 `경제학 원론` 집필을 도와주기도 했다. `노무현 캠프`에 뛰어든 후에는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 윤원배 숙명여대교수, 윤여진 이화여대 교수 등과 팀을 이뤄, `7% 신성장이론`을 개발했고, 선거 승리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로 재경ㆍ통상 분야를 담당했다. 최대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균형감각인 것으로 평가된다. 참여정부의 성패를 가늠하게 될 국정과제를 일일이 챙겨야 하는 정책실장에 임명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수위나 청와대에서 그와 함께 일해 본 관료들은 균형감 있는 정책 판단 능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전형적인 `선비`스타일인 이 실장이 잡기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실력가라는 사실은 주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다. 바둑 실력은 아마 6단으로 프로급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공무원 바둑대회를 하면 아마 상위급 입상 가능할 것 같다”고 은근히 바둑실력을 내보인다. 오목 실력도 대한민국 최고 수준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당구는 고등학교 때 150까지만 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후배들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고스톱보다는 카드를 즐기는 편이다. 부인 김상희(47)여사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다. ■ 약력 ▲대구(53)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한국경제발전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 ■ 내가 본 이정우 실장 - 김민남 경북대 교수 이정우 실장은 인상과 똑 같이 언제나 조용하고, 남의 얘기를 주의 깊게 경청한다. 하지만 자기의 얘기를 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말하고, 논쟁이 시작되면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이 실장이 제일 좋아 하는 것은 책 읽는 일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강의는 항상 열정적이었고 학생들은 이 실장의 강의를 가장 들을 만한 강의로 해마다 선정했다. 학생들은 경제이론을 명확하게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이를 현실에 적용하고 철학적 배경을 설명해 주는 이 실장의 강의를 높이 평가했다. 이 실장은 사회사상가다. 강의의 많은 부분도 사회사상에 할애 됐다. 한 번은 경제학 수업에서 왜 사상과 철학을 논하는지 물어 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대학 신입생들의 `군기` 잡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이를 바꾸기 위해 학생들에게 사상과 철학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휴머니스트다. 한 번은 정신대 할머니를 대학에 초청해 강연회를 연 적이 있다. 이유인 즉, 이전에 학생회가 정신대 할머니를 초청해서 강연회를 열었는데, 단지 20명 정도의 학생들만이 모인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자신이 직접 학생들을 모아 할머니들의 강연을 듣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자리에 욕심이 없어서 대학에서도 공식직함이 들어 있는 일은 거의 맡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해야겠다고 작정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95년 학부제가 대학가의 이슈로 등장했을 때였다. 이 실장은 학생들이 대학 안에서 충분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학부제가 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몇 일 밤을 세워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대학에 제출했다. 이 중 많은 부분이 채택됐고, 경북대는 학부제를 채택한 처음 몇 대학 중 하나가 됐다. 진보하고 보수로만 구분하자면 이 실장은 진보에 속한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스펙트럼의 양극으로 이해하면 이 실장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점에서 약간 진보쪽으로 치우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대담=황인선 정치부장, 박동석기자 /정리=김대환기자 everes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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