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중국 방문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의 자리에서 셋째 아들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에 대해 ‘서방의 뜬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17일 복수의 대북 전문가들은 다소 조심스럽긴 하나 대다수 김 위원장 발언이 ‘연막용’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 발언이 원자바오 총리를 거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까지 전해졌다는 점에서 그 진위와 전달 배경에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일단 김 위원장으로서는 제3차 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김정은 후계 공식화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자 이로 인한 권력 누수를 방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정은에게 공식 직함을 주거나 비공식적으로 역할을 증대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후계자로서 주목 받게 될 것이고 이는 곧 김 위원장 중심의 1인 통치 시스템의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 자신도 1974년 내정 후 1980년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까지 6년간 나름대로 업적을 쌓으며 김일성 주석을 보좌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정은 후계구도로 시선이 집중돼 외부에서 권력누수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고 지적했으며,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북한에서 김정은 후계는 불변의 사실이므로 김 위원장의 발언은 연막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속도를 늦추기 위한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서방 언론들이 잇따라 3대 세습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김정은이 권력을 이양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일종의 ‘신호’를 김 위원장이 내보낸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김정은이 아직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이고 후계자로 내세울 만큼 ‘치적 쌓기’나 ‘우상화’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점에 근거한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김정은 후계구도에 뭔가 중대한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 상순으로 예정됐던 당 대표자회가 연기된 데에는 그 만큼 큰 사건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전국 각지의 대표자들을 평양에 불러 놓고 44년만에 소집된 당대표자회를 연기한 것 자체가 회의에 후계문제를 의제로 올릴 수 없을 만큼의 ‘심각한 상황’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