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담배. 남성을 상징하는 전형적 영화 아이콘이다. 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 기백번은 우려먹었을 법한, 피 흘리는 남자가 한 손엔 권총을 쥐고 입엔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그 모습 말이다. 영화 ‘야수’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펄떡대는 두 남자가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물씬하게 풍기는 비장한 남성미. 영화 후반부, 온 몸에 피범벅이 된 권상우가 쓰러지면서도 손에 쥔 총을 놓지 않은 채 잘근잘근 씹듯 담배를 끼워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장면에 이르면 비장함은 절정에 달한다. 비록 그 아우라가 공장 기성복마냥 진부하다 해도 꽉 짜여진 영화의 구성은 어쨌튼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형사와 검사, 그리고 깡패다. ‘보이면 조지고 걸리면 까는’ 물불 안 가리는 형사 장도영(권상우)은 오로지 범인을 잡는 데만 혈안이 됐다. 동생이 길거리에서 조직폭력배에게 칼에 찔려 죽는자 도영은 복수에 나선다. 정의를 추구하는 냉철한 엘리트 검사 오진우(유지태). 3년 전, 거물 조직폭력배 유강진 사건을 수사하고 두목을 구속시켰으나, 그와 연계된 권력의 눈에 밉보여 사건을 처리해 놓고도 지방에 좌천됐다 복귀했다. 출소한 유강진을 제대로 잡아보기 위해 수사에 나선 오진우는 형사 장도영과 손을 잡는다. 조직폭력배계의 거물 유강진(손병호). 출소 후 겉으로는 사회사업을 하며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알고보면 더 비열해졌고 더욱 권력과 밀착돼 온갖 비리를 저지른다. 힘을 갖고 있는 그는 아예 형사와 검사를 법정에 죄인으로 세워 버린다. 그러나 그를 향한 오진우, 장도영의 복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영화는 애초 지난해 연말 ‘태풍’ ‘킹콩’과 제대로 한 판 승부를 벌일 뻔 했다. 배급사 측의 개봉 연기로 승부는 없던 일이 됐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이야기의 짜임새만으로는 이들 영화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깡패 잡는 놈이 죄인이 되냐’며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두 남자의 처절한 눈물은 관객들을 어느 정도 설득시키며 정통 느와르의 정석을 밟아간다. 권상우와 유지태라는, 아직은 연기자로서 이뤄 놓은 것보단 이뤄 갈 게 더 많은 이 두 젊은 배우는 다행히도 이제까지 자신들의 연기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과 연기대결을 펼쳤던 유지태의 성장보다는, 이제껏 ‘혀 짧은 목소리’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권상우의 성장이 돋보인다. 그저 그런 ‘아이돌 스타’로만 머물진 않겠다는 그의 내공이 돋보이는 영화다. 다만 정통 느와르라는 틀에 갖힌 전형성은 ‘새로운 느와르’를 기대한 관객들까진 충족시켜주진 못한다. 캐릭터의 묘사는 탁월하지만, 형사 장도영이 왜 그토록 행복에 집착하는지, 검사 오진우는 왜 그토록 정의를 추구하는지, 깡패 유강진은 왜 그렇게 악독하게만 묘사되는지를 관객에게 설득시키지 못한 채 갖춰진 모습의 평면적 묘사에만 그친 건 아쉬운 부분. 스포일러 탓에 밝히지 못하는 결말은 한국 메이저 상업영화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세다. 12일 개봉.